우리는 기다려주며 자란다.

by 단어

기다리는 일은 즐겁지 않습니까. 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다. 이훤 작가님의 '숙명'이라는 시는 기다리는 일은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며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기다리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이다. 먹고 싶은 건 지금 당장 먹어야 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당장 달려 나가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연락해서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 사람을 기다리는 일, 행복을 기다리는 일, 사랑을 기다리는 일, 일을 기다리는 일…. 우리는 살면서 아주 많은 것을 기다리곤 한다. 나는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이지만 시의 제목처럼 기다리는 일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런 인내심 없는 나를 혼내기라도 하듯이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인내심 없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존재는 바로 아이들이다. 가정 센터에서 실습을 하며 8살에서 10살 사이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하는 일은 간단하다. 담당 선생님을 도와서 옆에서 아이들의 학습을 보조하면 된다. 말이 보조지 그냥 옆에서 아이들이 문제 푸는 것을 지켜보거나, 게임할 때 힌트를 주거나, 아이들이 해 온 숙제에 동그라미를 쳐주고 참 잘했어요! 등의 칭찬을 해주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이 모든 일은 아이들이 문제를 잘 풀고,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숙제를 해왔을때의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는 잘 앉아 있지조차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한 첫 시간에는 두 시간 동안 아주 기가 쏙 빨렸다. 미소를 유지한 채로 중구난방의 아이들을 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자아이들은 어쩜 그렇게 활력이 넘치는지 두 시간 동안 책상 밑으로 내려갔다가, 의자의 방석을 던졌다가, 조금 험한 말도 서슴지 않고 주고받는다. 눈에 초점을 잃은 나와 나의 동료들을 비웃듯이 아이들의 기세는 점점 더 등등해진다. 첫 실습을 끝낸 우리는 서로 속삭였다. 악마를 보았다고.


두려움에 떨며 전의를 다지고 들어간 두 번째 시간에도 별로 달라진 건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정신없이 웃고 떠들고 서로의 얼굴만 봐도 까르르하고 웃는다. 우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랜다. 하지만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도 구원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미소 선생님. 기초 학습 지원 프로그램의 담당 선생님이신 미소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센터 내에서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친절한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으로 실습생인 우리에게도 항상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주신다. 아이들이 미소 선생님 말씀은 잘 듣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선생님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주의를 줄 수 있다. 대단한 방법을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이렇게 발전한 세상에 초등 저학년 남자애를 책상 앞에 앉혀 놓을 수 있는 고상한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나 보다. 큰 소리로 눈을 크게 뜨며 말하는 것만이 현재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미소 선생님을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에는 이뿐만이 아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한명 한명의 고유한 특성을 다 알고 계신다. 수업 중간중간 혹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슬쩍 알려주신다.


"수혁이는 엄청 장난꾸러기 같아도 숙제는 제일 잘 해와요. 은근히 모범생이라서 옆에서 그냥 모르는 것만 살짝씩 알려주시면 돼요."

"환희는 과묵하긴 한데 눈치가 빨라서 시키는 건 군말 없이 해요. 초반에는 조금 까칠해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조이는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해요. 그래서 수업에 집중 안 하고 선생님들한테 자꾸 말 걸 텐데 말이 너무 길어지면 끊어주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잔뜩 지쳐버린 우리의 공허한 눈빛을 읽으셨는지 아이들을 대신해서 사과 인사를 건네시기도 한다. 원래는 이만큼이나 산만하지는 않은데 새로운 선생님이 와서 흥분한 것 같다고.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다고. 다음 시간에는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원래는 착한 애들이라고. 원래는 착한 아이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눈빛에서 애틋함이 보인다.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눈빛이 너무 빛나고 온화해서 나는 그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나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다고 할 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미움은 우리를 단절시키지만 사랑은 서로를 궁금하게 만든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시간, 기적적으로 아이들이 천사가 되어 말을 너무 잘 듣고 책상에 얌전히 앉아서 수업을 무사히 들었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이었고, 선생님은 계속해서 진땀을 흘리셨으며 때때로 큰 소리로 말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도 종종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선생님도 우리도 아닌 아이들의 작은 행동이다. 우리에게 눈길은커녕 이 선생님들 필요 없는데 왜 왔어요~~?하고 묻던 아이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서 있는 나를 위해 의자를 쓱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건 마치 내가 싫어하는 같은 반 친구에게 사랑 고백을 받은 기분이었다. 고맙고 감동인데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조금 더 큰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순간 미소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래 보여도 많이 컸다고. 3년 정도 이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스케치북에 낙서만 하던 아이는 이제 제법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고, 읽기를 힘들어했던 아이는 어눌하지만 한 문장씩이라도 읽게 되었고, 이제는 구구단도 외울 줄 안다고. 아마 아이들은 3년 동안 아주 조금씩 자랐을 것이다. 마음이 크는 속도는 키가 크는 속도와는 달라서 그 변화를 눈치채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심과 끈질긴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관심과 인내 속에서 아주 조금씩 컸을 것이다.


끝까지 아이들을 향해 있는 선생님의 시선과 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과 우리를 생각한다. 나 또한 많은 사람의 인내를 품고 지금까지 자랐다. 무언가 기다리기 힘겨울 때마다 선생님의 땀과 미소를 떠올리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애정을 기억하고 싶다. 우리는 기다림을 받는 사람이었다가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면서, 그 시선 안에서 훌쩍 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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