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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Jul 17. 2021

파도를 타려다 그만...응급실에 갔다

서핑의 성지 양양 죽도에서 서핑하다 입을 꿰맨 사연


나의 첫 서핑은 5월의 어느 날 제주도의 서귀포 쪽의 표선해수욕장이었다.

날이 너무 맑았고, 파도는 초보인 내가 봐도 너무너무 잔잔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내 인생의 첫 서핑에서 난 두 번 만에 테이크 오프를 했다. 내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이라 착각했다.

(정말 착각이었다. 초반에 테이크 오프를 잘한다고 절대 서핑을 잘한다고 오해 마시라...)


그렇게 제주를 다녀온 뒤 나는 보는 사람마다 서핑 이야기를 했고 함께 서핑 가자고 졸라댔다.

제주에서 서핑의 맛을 보았으니 서핑의 메카라고 불리는 서퍼의 성지인 양양이 다음 타깃이었다.

여행 동호회 단톡방에 서핑의 매력에 대해 마구 마구 쏟아내었고, 서핑 가자는 이야기를 전에도 한 적이 있었고

다들 관심을 보여서 우리의 서핑 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단 지인 찬스로 예약하기 어렵다던 쏠비치 양양을 숙소가 첫 번째 예약이었고,

주목적이었던 서핑을 검색을 거쳐서 액티비티 플랫폼인 프립으로 두 번째로 예약하고,

마지막으로 뚜벅이 집단이던 우리의 발이 되어줄 렌터카를 예약했다.


마침 여름 시즌 맞이로 특가 판매를 진행했고, 8만 원이던 강습 패키지를 6만 원에 예약했다.

(이게 뭐라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서핑 강습하는 많은 서핑 스쿨이 있었지만 강습을 자세히 오랫동안 받고 싶었던 나는 다양한 서핑 강습 중에서도 긴 시간을 강습해주고 이용자 평점도 좋았던 서프 오션으로 선택했다.


서핑 강습은 총 5단계로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 환복 및 교육 준비(20분)

2. 이론교육_ 서핑의 이해, 안전교육, 기본 룰 설명(20분)

3. 지상교육_ 실전에 필요한 동작 연습 및 자세 교정(30분)

4. 해상 실전 교육_ 실전 연습, 보드 컨트롤, 테이크 오프, 파도 잡는 방법(60분)

5. 마무리_수업 종료 후 자율 서핑(10분~)


우리가 예약한 것은 슈트+보드+강습 패키지와 슈트+보드 패키지.


이제 우리 앞에 남은 문제는 날씨였다. 우리가 출발한 시각은 오전 9시 30분, 강습시간은 오후 3시였다.

날씨는 우리가 결정할 수가 없으니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즐기고 오자고 했다.

장마 예보가 있더니 역시 가는 날에도 앞유리에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분명 하늘이 맑았다가,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점점 안개로 둘러싸였다. 우리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날이 흐려서 몸이 그을리지 않을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차를 타고 노래도 듣고 못다 한 이야기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일찍 체크인을 안 하면 1층을 배정받을까 두려워서 숙소 체크인만 하고 바로 서핑 스쿨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언제 가도 좋은 쏠비치 양양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고 다음 날 아침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


숙소 체크인을 하고 서핑 스쿨로 향하다 보니, 도착한 시간이 거의 강습 시작 5분 전이었다.

뚜벅이들끼리 여행이다 보니 주차에 대한 생각을 사전에 못했는데 장마에도 양양에는 차들이 넘쳐났다.

서핑 스쿨 앞에도 이미 만차가 되어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오다 보니 우리가 도착했었을 때 이미 강습시간이 흘러가고 있었고, 다른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슈트를 환복 하는 것이 먼저라, 도착하자마자 짐을 던져두다시피 하고 몸에 아주 꽉.... 끼는 슈트를 입으러 탈의실에 갔다. 탈의실에는 서핑을 하고 나온 사람들의 열기로 끈적했고 바닥에는 물기가 가득해 슈트를 입는데 꽉 끼여서 안 들어간다는 것 이외에도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환복을 하고 이미 진행되고 있는 교육장에 가서 자리를 잡았던 시간은 이미 3시 20분경.

파도와 서핑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이 이미 한창이었다.

기본 적인 안전 수칙에 대한 교육과 함께 서핑을 하기 위한 기본 룰도 알려주셨다.

제주에서 배웠을 때보다 더 자세하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교육해서 더 좋았고, 교육 앞부분을 놓쳐서 아쉬웠다.



실내 교육이 끝나고 이제 실외 교육을 위해 죽도해변으로 이동했다. 

안에서만 듣다가 바다를 향하니 이미 마음이 들떴다. 들뜬 마음을 느낄 여유도 없이 야외 강습이 이어졌다.

보드에 대한 용어 설명부터 시작되었고, 안전에 대해 다시 한번 반복 교육이 이루어졌다.

실전 교육을 위해 보드에 엎드려 푸시 자세와 패들링을 연습하고 테이크 오프까지 지상교육을 했다.

이미 제주에서 첫 서핑 경험이 있었던 지라 두 번째 교육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일행들이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무려 알려주기까지 하는 여유를 부렸다.


이제 보드를 가지고 바다로 뛰어들 때가 되었다. 

제주에서 이미 서핑 보드가 얼마나 무거운지 경험했던 나는 골반에 보드를 걸친 채 여전히 낑낑대며 운반했다.

다른 교육생들을 둘러봐도 모두 다 같은 신세로 낑낑대며 힘들게 보드를 모셔가고 있었다.


바다에 입수하기도 전에 입이 귀에 걸렸다.


이제 진짜 실전이었다.

바다에서의 서핑은 푸시와 테이크 오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보자라 그런지 어느 시점에 파도를 타야 하는 지를 직감하는 본능이 좌우한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강사님이 내 패들링 대신 파도가 오는 그 순간, 뒤에서 밀어주며 언제 푸시를 해야 하는지, 언제 테이크 오프를 하는지 목이 터져라 외친다. 그래서 초보는 강습이 필수이다. 언제 파도가 오는지 알 수 없기에.

열심히 강습받은 푸시와 테이크 오프를 머릿속에서 연습하며, 파도에 몸을 맡겼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푸시에서 테이크 오프까지 이어지면서, 파도를 탄다는 것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같이 간 일행이 찍어준 서핑 인증숏에는 '날아라, 슈퍼보드' 표지 사진으로 걸만한 사진이 걸렸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를 외쳐야 할 것 같은.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나쁜 짓을 하면은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우리에게 들키지


밤에도 낮에도 느낄 수 있는

눈과 귀가 있다네 우리의 손오공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사랑하며 살면은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평화는 올 거야



푸쉬 -> 업 = 날아라 슈퍼보드!



나쁜 짓을 한 건지, 손오공에 들킨 건지.  그렇게 '날아라 슈퍼 보드'를 타고 난 응급실로 날아갔다.


서핑을 하는 내내 비가 후드득후드득 머리 위로 쏟아졌고, 하늘은 점점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한두 방울 떨어지는 듯하더니 이내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했다.

강습이 끝나고 오늘 파도가 쎄서 자유 서핑은 추천하지 않는다는 강사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스스로 연습해 보고 싶었던 수강생 전원이 자유 서핑을 했다. (역시 강사님 말을 들어야 한다)


파도에 몸을 맡긴 건지, 몸이 휩쓸려가는 건지 모르게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지쳐서

이제 오늘 서핑에서 하산해야겠다는 눈짓을 일행들과 주고받고 나가는 길이었다.


허벅지 높이도 아닌 종아리 높이의 파도에서 오늘 하루를 통틀어 가장 큰 파도가 뒤에서 날 덮쳤다.

뒤를 돌아보지 않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파도에 생각할 틈도 없이 난 파도에 휩쓸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보드에 입을 부딪혀 입이 얼얼했다. 어쩐지 느낌이 쌔...했다.

살짝 부딪힌 거 같았는데 입을 더듬어보니 손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를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파도에 또 맞을 수도 있어 일단 어기적 어기적 보드를 챙겨 해변으로 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이 날 발견하고는 함께 혼비 백산해서 다리에 부착된 리쉬를 잡아당기다가 또 넘어질 뻔했다.

(피를 보고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행들 중 한 명이 같은 파도에 휩쓸려 다쳐서 서핑스쿨로 갔다면서 나에게도 보드는 자기에게 맡기고

서핑 스쿨로 일단 가라고 해서 덜덜 떨면서 서핑 스쿨로 무거운 발걸음을 향했다.


서핑 스쿨은 이미 다친 일행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직원이 나를 보더니 막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더 놀랬다. 내가 많이 다쳤나 보다. (알고 보니 내 이전 다친 일행이 도착했을 땐 비명이 더했다고 한다.)

일단 모래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면서 얼굴 쪽을 물로 세척했다. 강사님은 매우 침착하게 행동하셔서 안심됐다.

세척한 뒤에는 일단 샤워실에서 슈트를 탈의하고 간단한 샤워 후 소독을 하던지 상황을 보자고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일행이 머리에 난 상처를 소독하고 있었다.

나는 보드 상판이 얼굴 쪽을 강타하면서 앞니가 아랫입술 쪽을 눌러서 찢어진 상처였다. 

보드의 모서리 쪽과 비죽한 날개 부분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치아도 부러진 곳 없이 멀쩡했다.


양양에는 갈만한 큰 병원이 없어서 우리는 강릉에 위치한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가 왔고, 차선 조차도 보이지 않아 굉장히 위험했다.

우리는 모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였고, 1시간을 넘은 폭우 속 운전 끝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둘이 나란히 응급실에 걸어 들어가려니 뭔가 민망했지만 같이 가서 외롭지 않았다.

나란히 원무과에 접수를 하고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우리 차례가 왔다.

혈압을 재고, 사고 경위를 밝히고 난 뒤에 대기하고 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베드에 누워 있으니 1차로 의사 선생님이 소독하는 절차가 이루어졌다.

그저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하는 것뿐이었지만 찢어진 부위를 사정없이 물총으로 쏘듯이 소독약을 쏘자 으윽... 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2차로 다른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상처 부위를 꼬매야 해서 마취를 한다고 했다.

따끔하다고 하는 경고를 미리 날렸지만, 따끔 정도가 아니라 치과 마취 주사 5번을 한 번에 쏟아붓는 것 같은 겪어보지 못한 역대급 고통에 눈물을 쏙 뺄 정도로 아팠고 비명을 질렀다. 눈물도 흘렸다.

사실 마취 후에는 꼬매는 지 안 꼬매는 지도 모르게 감각이 없었다. (마취가 아픈 만큼 강했나 보다)


나 말고 다쳤던 또 다른 일행은 두피 부분에 스테이플러 3방을 박았다. 휴... 그것도 듣기만 해도 괴롭다.

나랑은 차원이 다른 아픔일 듯하다. (X레이에 머리 부근에 스테이플러가 나오는 신기한 사진을 보았다고 한다)

응급 처치가 끝나고 둘 다 파상풍 주사(서핑 보드는 쇠로 되어 있어 맞아야 한다고 한다)를 맞고 수납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차량으로 가기 위해 우리 둘은 마치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처럼

피 묻은 수건을 함께 쓰며 렌터카에 탑승했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응급실을 나와 차량에 탑승한 뒤 철없이 인증샷 (잘 보면 마스크는 피로 물들었다...)


"고통을 잘 참아내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잠시 기다리면 다시 원점에 가까운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결코 어떤 실패도 거기서 끝이 아니며,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삶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 "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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