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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Nov 29. 2021

버스를 탔는데 카드가 없다...?

혼돈의 그 순간,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날은 친한 지인들과 강원도 평창으로 캠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꽉 찬 1박 2일 일정을 소화하고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저녁 8시, 충분히 피곤한 시간이었다.

전날 영하 10도의 혹한기 동계 캠핑으로 덜덜 떨기도 했고, 술도 얼큰하게 마시기도 했다. 

피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집에 빨리 귀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온갖 잡념과 욕심이 들은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일행과 함께 정류장에 세워진 전광판을 확인했는데 내가 타려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주어 급하게 버스를 어느 라인에서 타야 하는지 눈을 바삐 움직였다. 

타야 할 곳은 찾았는데 지하철 정기권과 카드지갑만 손에 잡히고 대중교통 겸용 신용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 정기권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는 것이 더 이득이었지만 짐이 많은 지라 버스를 택한 터였다. 게다가 광역버스는 대략적으로 30분에 1대 정도가 오기 때문에 이번 버스를 놓치면 피로가 더 가중될 거 같았다. 

그리고 함께 기다려주던 일행들도 일단 버스에 타서 찾으라고 해서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하철 만원 열차에서 밀려 내리듯 그렇게 버스에 올랐다.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그때부터 미친 듯이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카드가 없다. 기분이 싸늘하다.

원래 나는 항상 물건을 동일한 장소에 비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방을 사용할 때 꺼내기 쉽게 앞주머니 쪽에 버스카드라던지 포켓용 티슈라던지, 민트 사탕이라던지, 펜이라던지를 넣어두었다. 이상했다. 

배낭의 메인 수납공간을 2번째 뒤져보았다. 그래도 없었다. 보조 가방으로 가져온 에코백도 뒤졌다. 

역시 없다. 큰일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3번째 배낭과 에코백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다시 굴려보았다. 지금 현재 내 수중에는 현금 5만 원짜리밖에 없는 상태이니, 일단 기사님과 대화로 결판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솔루션은 3가지였다.


1. 계좌이체 - 버스회사 계좌로 버스비를 이체한다.

2. 현금 5만 원 - 5만 원을 내고 계좌로 차액을 송금받는다.

3. 하차 - 버스에서 내린다. 


최대한 버스에서 내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쉬운 방법인 계좌이체 권법을 썼다

요새 이체가 안 되는 곳이 어디 있던가..??

장사하는 분들은 거의 모두 이체를 받아주는 시대가 되었다고 판단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신호 대기로 멈춘 기사님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님,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버스카드가 없어서 그런데 계좌 이체로 버스비 드려도 될까요?"

"아유, 그건 안돼요!"

"그럼 혹시 5만 원짜리밖에 없는데 이거 내도 될까요..??"

"5만 원짜리를 어떻게 거슬러줘, 그것도 안돼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앞이 캄캄해졌다. 계좌이체랑 현금이 둘 다 안된다니... 말도 안 돼ㅠ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기사님 너무 냉정해!! 흑흑.. 안 되겠다.. 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내리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갑자기 옆자리에서 카드를 쑥~ 내밀었다. 


"저기... 제가 대신 카드 찍어드릴게요. 제 카드로 찍으세요." 


와... 천사는 멀리 있지 않았다. 얼굴도 이쁘고 맘씨도 고운 여자분이 옆자리에서 자신의 카드를 내미는 것이었다. 자신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너무 당황했었다면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진짜 눈물 날 뻔했다.

카드를 2개 가지고 있어서 찍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다행이라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섣불리 카드를 못 받고 망설이고 있는데 내 손에 카드를 쥐어주었고,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하다는 말뿐이었다. 배낭 안에 어딘가에 카드가 있을 거 같은데 지금 계속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감사하다고 여러 번 반복하면서 카드기에 그분의 카드를 대었다. 


밖은 추웠는데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졌다. 천사 같은 옆자리 승객 덕분에 난 지옥에서 천국으로 승천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얼마나 당황스러우실지 안다면서 그녀는 차비만 내준 것이 아니라 나의 당황스러운 마음까지 공감해줬다. 


버스 기사님도 감동을 받으셨는지 아직 세상이 따듯하다면서 좋은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시는 말이 옆자리 승객분이 아니었으면 자기가 다음에 탈 때 차비 내라고 하려고 했다고 이야기했다.

순간 또 '아오~~~~~그럴 거면 처음에 그렇게 말씀하시지..ㅠㅠ'라는 생각이 치밀었지만 그녀의 따뜻한 말과 행동에 나의 화남과 당황스러움도 사르르 녹았다. 그러면서 내릴 때 카드 두 번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시자 이따가 버스카드 찍는 것 때문에 어디서 내리는지를 물었다. 내려야 할 정류장 이름을 대자 하차 태그 때문인지 자신도 거기서 내리겠다고 했다. (감사합니다..ㅠㅠㅠ)


아무리 생각해도 빚을 지는 느낌이라 모바일 뱅킹 어플을 켜 차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제가 꼭 이체를 해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녀는 끝까지 진짜 안 주셔도 괜찮다고 말하다가 연신 권하자 그게 마음이 편하시다면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겨우 계좌번호를 찍어주었고 그렇게 차비를 갚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함께 내리면서 헤어질 때도 조심히 잘 가시라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더 이상 배낭이 무겁지 않고 날씨도 한결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고 발걸음도 뭔가 가벼워졌다. 

나중에 내가 누군가가 차비가 없어서 곤란을 겪는 것을 발견한다면 반드시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받은 이 호의가 누군가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다짐했다. 




세상은 아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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