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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Dec 20. 2021

친했던 지인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코로나로 인한 사망 이야기


어제 친한 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몇 달 만에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바르르 떨리고 있었고 물기가 가득했다. 


"여보세요? 언니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어?"

"유나야.... 티티 오빠가 17일에 죽었데... 엉엉엉.... 어떻게 해.... 엉엉엉..."

"... 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말인지 바로 한 번에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우느라고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자꾸 다그치듯 물었다.

두 돌 된 쌍둥이 아이와 와이프를 가족으로 두던 그 오빠는 코로나로 인해 죽었다고 했다. 

먼저 쌍둥이 아이가 코로나에 걸린 후 아이를 통해 코로나에 전염되었다고 전했다. 

불쑥 아이와 와이프가 걱정되었다. 


"와이프랑 쌍둥이는????!!!! 둘.. 아니 셋은 괜찮은 거야??"

"응응. 흑흑.. 다행히 쌍둥이는 코로나 완치했고, 와이프도 다행히 괜찮은가 봐. 방금 통화했어... 흑흑

지금 경황이 없어서 길게 통화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흑흑.. 그리고 장례는 안 하기로 했데. 흑흑...

우리 티티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해.... 엉엉엉..."

 "그나마 다행이다. 와이프랑 아이들은 괜찮아서... 엉엉.. 장례식도 안 해서 가보지도 못하겠네... 흑흑..."


우리는 둘 다 울었고, 남겨진 와이프와 두 돌 된 쌍둥이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았다.

장례식도 안 한다고 하니 마지막 티티 오빠의 가는 길을 배웅해 줄 수 조차 없었다. 

이 세상에 나와 그녀와 우리들이 부르던 티티 오빠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를 수가 없다니... 

40살도 안된 그가 이렇게 갑자기 이별을 전한다니 믿기가 어려웠다. 슬픔이란 말로 다 표현이 될까.


언니는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와이프가 이제 티티 오빠의 핸드폰을 건네받게 되어서 이제야 남편 핸드폰의 연락처로 하나 둘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최악으로 기록될 2021년이었다.


우리는 10년 전쯤 강남에 위치한 파고다어학원에서 영어 수업을 함께 들었고,

영어 수업의 특성상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서로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뒤풀이로 이어지게 되어

수업을 듣는다기 보다는 뒤풀이를 하기 위해 수업은 듣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친해졌다. 


더 이상 영어 수업을 듣지 않게 된 이후에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쌓였던 지라 수업은 끝나고 뒤풀이만 남아 10여 년간 이 모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누군가가 결혼한다고 하면 함께 가서 축하해주는 사이가 계속되고 있었다가 그나마도 코로나로 인해 모임도 뜸해지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점점 더 보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물론, 3년 전 티티 오빠의 결혼식에는 모두가 참석했고, 일란성 쌍둥이었던 그의 형제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몇 개월 되지 않아 쌍둥이 아이가 생겼고, 모두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 


그러다가 몇 달 전, 모임의 멤버 중 가장 어린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되어 결혼 소식을 전했지만 다들 코로나가 너무 심해서 참석을 거의 못하는 분위기였다. 티티 오빠가 결혼식 때 오는 거냐고 카톡으로 연락을 주었는데 그중에 친했던 언니랑 가야 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둘 다 못 가는 걸로 결론을 짓게 되었다. 결국 그 언니가 자기가 어차피 통화할 거니 너도 못 간다고 이야기할 테니 답장은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메시지만 읽고 답변을 안 했었는데 그게 마지막 연락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그 결혼식에는 티티 오빠만 참석했다. 


언니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우리가 결혼식에 가서 티티 오빠 얼굴이라도 볼 걸...'하고 아무 소용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울었다. 


뉴스에서 계속 코로나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 댔지만 그저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내가 아는 지인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별을 겪고 나니 그 무서움에 손이 바르르 떨렸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코로나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고, 내 옆에서도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있었을까?

위증증 환자가 늘어 대학병원에 뉘일 자리가 없다고 뉴스에서 연신 떠들어 대는 것이 사실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서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인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 같았다. 

40세가 안된 젊은 나이에도 세상과 이별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저 목이 매이고, 

심지어 이별할 때조차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멀리 화장터에서 이름표를 들고 이름을 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이별의 인사도 맘대로 할 수 없다니 너무 가혹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존재한다지만 코로나로 인한 이별은 생각보다 더 가슴 아팠다. 

전쟁과도 같은 코로나와 오늘도 싸우고 있는 병상에 있는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한다. 

이 지구 상에서 코로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깊은 위로를 건네고 싶다.

코로나로 인한 위중증 환자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한동안 나의 삶의 한편을 장식했던 그에게도 안녕을 고한다.


"티티 오빠,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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