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사회과학책도 아니고 진짜 자연과학책을 읽었다.
칼 세이건의 후계자, 닐 디그레스 타이슨이 쓴 '날마다 천체물리'
너무 긍정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인간의 수명이 약 100년 정도라 하면 내가 그 나이가 될 때쯤엔 과학의 발달로 생명이 적어도 50년 정도는 더 늘겠지란 희망과 동시에 재수 있으면 몇 백 년은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 말이다. 물론 완전 허구적인 상상은 아니다. 많은 미래학자와 과학자들이 실제 21세기 후반에는 혁명적으로 인간 수명이 일어날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날마다 천체물리'를 집중해서 읽다가 마음 한편이 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우주과학이다 보니 여기서 다루는 시간 척도가 작아도 수억 년이다. 지금부터 1억 년 뒤에는 내가 100% 이 지구 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고 지랄 발광을 떨어도 1억 년 뒤... 사실 1억 년 뒤까지도 아니고 1000년 뒤에 나란 존재가 이 땅위 있을 수 있을까? 내 막연한 희망과는 별개로 사라질 것이라는 게 확실했다.
뭔가 아찔해지고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함에 한 2분은 멍을 때렸다. 내가 사라졌을 때의 세상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고 지금껏 크고 작든 어떤 흔적을 조금씩 남겨왔다. 내가 쌓아온 좋은 기억들, 가족, 그리고 좋은 추억을 만든 친구들도 언젠가 다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이라는 게 얼마나 냉정한가? 엄밀히 말에 수천억 개의 은하에 보잘것없는 이 태양계 귀퉁이에 붙은 지구란 곳에, 수억 년 동안 진화를 해서 문명을 겨우 이루고 깨작 해봐야 100년을 사는 인간이 어떤 삶은 옳은 것이고, 가치 있다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가 싶다. 우린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을 믿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건 이런 철학적 니힐리즘이나 나라는 객체의 연약함과 미개함이라는 깨달음이 가끔씩은 정신적 편안함을 줄 때가 있다. 무기력이 아닌 합리적 포기 단계라고나 할까. 마치 봉건제도의 농부가 귀족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 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보면 될까나?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상관없이 시간은 결국 흘러가고 현재는 까마득한 과거가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우주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 뭐 결국 내가 원하는 데로 살아야 하니.. 이래야 성공해야 하니라는 철학자와 부자들의 자뻑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밧줄 없이 번지점프를 하며 지르는 공허함 외침이지 않을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건 사실 착각이라고. 그런 건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무인도에서 평생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2018년의 주류 한국 사람들 또는 부자 서방 세계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에 맞춰 살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명제를 곱씹어 보면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믿음이나 행동, 사회 규범들은 사실 절대적 규칙이 아니다.
천체과학책이나 물리학 책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너는 하찮은 존재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메시지가 일명 '팩폭(팩트폭격)' 같다. 근데 이 팩폭은 좋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삶의 숭고함을 느끼게 해 주고 참 겸손하게 만든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주과학 책을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닐 타이슨이 말하길...
"날마다는 무리일지 몰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만이라도 진면목을 아직 드러내지 않은 우주적 진실들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마 전쟁할 시간을 좀 줄이고 즐거운 일을 찾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