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면 그냥 흘렸을 텐데, 이제 나에게 남미는 딴 나라가 아니다. 요즘 계속되는 아르헨 구제금융 위기를 보니 당시 생각이 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정말 도시도 멋있고 사람도 멋있지만, 이상하게 시장이나 마트를 가면 뭔가 활력이 없어 보였다. 나는 남미를 14개월 동안 도시 수백 곳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돌아다녔기 때문에, 각 지역의 분위기가 다른 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파타고니아에서 아르헨과 칠레 국경을 반복해서 넘어 다니며 느꼈던건, 정말 칠레에 비교해서는 아르헨의 경제 분위기는 확실히 어둠이 짙었다.
나는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남미가 가지고 있는 경제 문제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캠핑에 필요한 물품이나 자전거 부품 등이 여기 물가에 비교해 보면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었다. 사실 이런 물품뿐 아니라 일반적인 공산품 모두가 너무 비쌌다. 우리나라 지마켓에 들어가면 오천 원, 만원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품들이 여기는 적어도 2~3만 원 했고 사실 찾기가 힘든 적도 많았다. 아이폰은 우리나라의 거의 두배 이상이며, 가전제품 등을 포함한 모든 전자제품, 스포츠 용품, 가구, 생활 용품, 자동차 등 모두가 우리나보다 월등하게 비쌌다. 싼 것은 오직 식료품 정도였다.
남미의 부국이라고 하면 칠레, 아르헨, 브라질을 뽑는다. 그들의 산업 구조를 보면 왜 이런 공산품들이 비싼지 이해가 된다. 그들 나라는 오직 가지고 있는 원자재와 농업에 집중되어있다. 한때 아르헨은 세계 최고의 부국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던 자원을 팔아 많은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유럽이 세계대전 이후 안정화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내리막을 걸었다. 특히 원자재 생산은 대외 무역에 매우 민감해, 잘 나갈 땐 돈을 벌어 이것저것 할 형편이 생겼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대외 무역을 하려면 개방경제가 지속되어야 하는데 보호주의를 못 한 탓에 다른 산업들은 자라지도 못했고 체불은 달러로 갚아야 하니 경제가 좋지 않을 때는 달러가 유출되고 페소의 가치가 계속 떨어져 통화 관리도 쉽지 않았다.
지금 아르헨의 경제 문제는 결국 고질적으로 약한 산업 기반과 더불어 정치적 개혁 실패가 그 원인이다.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 국가는 모두 우리나라 이상으로 큰 빈부, 사회 격차 그리고 실타례처럼 얽히 역사, 인종, 정치적 복잡성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고질적으로 약한 산업 구조, 만성적인 정치적 부패, 그리고 기득권 정치로 인한 사회 불평등.
그래도 결국 이 모든 것의 답은 '정치'다. 이번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