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낯선 동네와 실어증

어린아이가 살아남는 법

by 정원



*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기억은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이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시거나 아픔을 자극한다면 읽기를 멈춰주세요.


지나온 시간이기에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어느덧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몇 시간 동안 잔뜩 긴장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아프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낯선 아저씨에게서

또 다른 낯선 아저씨,

아빠에게로 넘겨졌다.


건네오는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동네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엄마와 함께 지낼 때,

태권도장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나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바깥세상은

오직 병원으로 향할 때만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슈퍼마켓 안,

사람들의 시선이 버거웠다.


낯선 공간과

수많은 목소리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삼켰다.


나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아빠는 내 손에

작은 장난감이 달린 사탕을 쥐여주었다.



낯선 동네에

첫 발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나는 말을 잃었다.


슈퍼 아주머니가 아빠에게 물었다.

“ 어머, 사장님 딸이에요?

너무 작다. 몇 살이야? 아빠 닮았네. ”


내게도 몇 마디를 건넸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웅웅 울릴 뿐,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슈퍼를 나와 동네를 걸었다.

많은 집들을 지나쳐

낡은 대문 앞에 멈춰 서자

나를 기다리던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아빠가 말했다.

“ 여기 네 오빠야. 인사해. ”

오빠는 나를 반가워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말을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몇 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집에 드나드는

낯선 이들을

극도로 경계하며

조그맣게 몸을 움츠렸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저 벽만 바라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며칠을 쉬며

나를 살피던 아빠는

다시 출근해야 할 날이

다가왔던 것 같다.


새벽 출근을 준비하며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었는지


잠들지 못한 채 깨어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옷을 입히곤

일터로 데려갔다.



아빠는 중장비 기사였다.


포클레인을 타고,

크레인을 타고,

덤프트럭에도 올랐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가득히 줄지어 서있던

중장비를 이리저리 살피다가도

빵빵대며 지나가는 수 없이 많은 차들을

요리 저리 피해 다녀야 했고,


흙먼지가 잔뜩 날리는 공간에서

흙으로 모래성도 만들고

아저씨들이 땅에 버린 종이컵을 주워다가

내 공간이라며 선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아빠의 주변 사람들은

나를 먹이려 애썼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입에 밀어 넣어

먹이는 순간


더러운 것이라도

입에 댄 것처럼

고개를 젖히곤 다 뱉어냈다.



결국 나는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었고,

초등학교도 제때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친구들과는

한 해 나이 차이가 생겼다.



그 시절,

1~2년간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내가 언제, 어떻게

다시 말을 하게 되었는지.


어린 나는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텨 지금에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