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살아남는 법
*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기억은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이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시거나 아픔을 자극한다면 읽기를 멈춰주세요.
지나온 시간이기에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어느덧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몇 시간 동안 잔뜩 긴장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아프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낯선 아저씨에게서
또 다른 낯선 아저씨,
아빠에게로 넘겨졌다.
건네오는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동네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엄마와 함께 지낼 때,
태권도장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나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바깥세상은
오직 병원으로 향할 때만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슈퍼마켓 안,
사람들의 시선이 버거웠다.
낯선 공간과
수많은 목소리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삼켰다.
나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아빠는 내 손에
작은 장난감이 달린 사탕을 쥐여주었다.
낯선 동네에
첫 발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나는 말을 잃었다.
슈퍼 아주머니가 아빠에게 물었다.
“ 어머, 사장님 딸이에요?
너무 작다. 몇 살이야? 아빠 닮았네. ”
내게도 몇 마디를 건넸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웅웅 울릴 뿐,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슈퍼를 나와 동네를 걸었다.
많은 집들을 지나쳐
낡은 대문 앞에 멈춰 서자
나를 기다리던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아빠가 말했다.
“ 여기 네 오빠야. 인사해. ”
오빠는 나를 반가워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말을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몇 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집에 드나드는
낯선 이들을
극도로 경계하며
조그맣게 몸을 움츠렸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저 벽만 바라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며칠을 쉬며
나를 살피던 아빠는
다시 출근해야 할 날이
다가왔던 것 같다.
새벽 출근을 준비하며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었는지
잠들지 못한 채 깨어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옷을 입히곤
일터로 데려갔다.
아빠는 중장비 기사였다.
포클레인을 타고,
크레인을 타고,
덤프트럭에도 올랐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가득히 줄지어 서있던
중장비를 이리저리 살피다가도
빵빵대며 지나가는 수 없이 많은 차들을
요리 저리 피해 다녀야 했고,
흙먼지가 잔뜩 날리는 공간에서
흙으로 모래성도 만들고
아저씨들이 땅에 버린 종이컵을 주워다가
내 공간이라며 선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아빠의 주변 사람들은
나를 먹이려 애썼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입에 밀어 넣어
먹이는 순간
더러운 것이라도
입에 댄 것처럼
고개를 젖히곤 다 뱉어냈다.
결국 나는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었고,
초등학교도 제때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친구들과는
한 해 나이 차이가 생겼다.
그 시절,
1~2년간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내가 언제, 어떻게
다시 말을 하게 되었는지.
어린 나는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텨 지금에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