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기억, 가난했던 일상
*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기억은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이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시거나 아픔을 자극한다면 읽기를 멈춰주세요.
지나온 시간이기에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어린 내게 이어진
기억의 흐름은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같은 학년의 친구들과는
한 해 나이 차이가 났지만
머리가 나쁜 편도 아니었던 것 같고,
말도 다시 곧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별 문제없어 보이는데
초등학생에겐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하나 있었다.
가난.
그리고 엄마의 부재.
교실에서는 항상 실내화를 착용해야 했고,
챙겨야 할 준비물도 만만치 않았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 다녔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빈 손으로 터덜터덜 학교에 갔다.
그때 당시엔
실내에선 외부 신발을 못 신게 하는
규정에 따라 학교에 들어서며
신발을 벗어두어야만 했다.
다들 깨끗하게 세탁해
뽀얀 실내화를 신고
실내를 누빌 때,
우리 반에선 유일하게 실내화,
아니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의 코찔찔이인,
내가 덩그러니 있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학교 앞 문구점에 데려가
실내화를 사주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얼마 못 가
나는 다시 맨발이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은
놀리기 딱 좋은 표적이 되곤 했다.
그 시절,
체벌이 한참 당연시 되던 시기였는데
과목별 선생님 중
내가 매번 준비물을 안 챙겨 오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틈만 나면
다른 친구들 앞에서 체벌을 일삼으셨다.
낙인 아닌 낙인이 찍힌 셈이었다.
" 쟤는 가난해. 쟤 엄마 없어.
쟤랑 놀지 마. "
무수히 많은 말들이
어린 마음에 콕콕 박혔다.
교실에서 무언가 사라질 때마다
아니, 옆반에서라도 잃어버린 물건이 생기면,
선생님들은 제일 먼저 내게 와 물었다.
나 아니라고
수십 번도 더 말하다가
나중엔 입을 꾹 다물고,
선생님을 노려봤던 것 같다.
어차피 내가 하는 말 따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고,
멋대로 내 몸과 가방을 뒤지며
윽박지를 것이란 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나는 죄인이 되었다.
교실에선 늘 엎드려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다녔으며,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라
책상 아래로 숨어버리기도 했다.
어떤 날엔
내 숨소리가 들릴까
숨을 꾹 참으며
수업 종이 울리길 기다렸다.
무언가 사라지지 않길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적은
내 인생을 통틀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들어주는 이 없고,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외로운 학교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