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세단어의 기억
*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기억은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이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시거나 아픔을 자극한다면 읽기를 멈춰주세요.
지나온 시간이기에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그 시절,
나는 늘 혼자 하교했다.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오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른 고개를 숙이고,
후다닥- 달려 집으로 향했다.
오빠는 고학년이었기에
나보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고,
집에서도 나는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냈다.
집 안엔 낡은 TV 한 대가 있었지만
수신료를 내지 않아,
화면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치지직— 소리만 가득한 고물 상자.
그걸 왜 집에 두었는지 의문이었다.
책 한 권 없는 집.
장난감도, 동화책도,
아이를 위한 무언가는
집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길에서 주워온 신문지를
해질 때까지 접고 또 접는 일로 하루를 채워갔다.
-
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빠니까.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올 아빠를 기다렸다.
-
곰팡이가 벽마다 가득히 피어오른 집.
찾아오는 이 하나 없지만
마당은 괜히 넓었던 그 집에서,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내리다
주인 할머니께 혼나고,
화단의 풀을 다 뽑았다가 또 혼나고,
어떤 날은 그렇게
작은 마당에서 사소한 말썽들을 부리며,
또 하루를 보내었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던 어린아이는
혼이 나도 마냥 해맑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래서 더 혼이 나기도 했다.
-
가난한 집엔
먹을 것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날들엔
학교에서 먹는 급식이 하루 식사의 전부였다.
아빠는 가끔, 아주 가끔
퇴근길에 계란이나 돼지고기를 사 오셨지만,
오빠가 친구들을 데려오는 날이 많아
냉장고는 금세 비워지곤 했다.
나중엔 동사무소에서
플라스틱 통에 담긴 한 끼의 도시락을
평일엔 매일 보내줬는데,
그 도시락에서
내 몫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항상 사라져 있었다.
범인은 성장기 오빠와 친구들.
-
아빠가 출장을 간 날이면
굶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빠는 점점 더 크고, 단단해졌고
나는 점점 더 작고, 말라갔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집엔,
간장과 같은 조미료도 거덜 난 채 채워지지 않았다. 대용량으로 있는 소금만이 존재할 뿐.
배가 고픈 어느 날,
나는 맨밥을 퍼먹고
거기에 소금을 말아 겨우 배를 채웠다.
그 짠맛은 오히려
더한 갈증과 허기를 불러왔다.
냉장고엔 마실 물 한 병도 없어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배탈이라도 난 듯이
그때부터 매일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
곰팡이 냄새,
짠 소금밥,
집 안 가득한 정적 -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어린 날의 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