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가정집 공부방

뒤틀린 사랑

by 정원



*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기억은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이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시거나 아픔을 자극한다면 읽기를 멈춰주세요.


지나온 시간이기에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


아빠는 자주 출장을 갔고,

어둑해진 저녁에도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하나 없던

그런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웬일로 평일 오후에

아빠가 학교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오빠와 함께 도착한 그 집은,

가정집의 한 방 안에

긴 책상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 공간이었다.


아빠는 그곳의 여자 선생님께

나를 맡기며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고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2층은 선생님의 집,

1층은 가정집 공부방.


처음 본 선생님의 인상은 다정했고,

곧이어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낯선 공간에서 오빠와 나는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한 몸에 받았다.


또래도 있었고,

나보다 훨씬 커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

그중 유일하게 나만 성별이 달랐다.

( 훗날 깨달았다.

그것이 이 모든 폭력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






그날 이후,

학교가 끝나면 곧장 공부방으로 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거나, 다른 길로 새면 안 됐다.


그것이

공부방의 첫 번째 규칙.


그리고 곧 이어지는 또 다른 규칙들.


두 번째.

정해진 양의 문제를 다 풀지 않으면

절대 집에 갈 수 없다.


세 번째.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는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적인 질문이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하루, 이틀.

갈수록 규칙은 늘어만 갔고,

공부방에 가는 길은 점점 더 공포로 다가왔다.






한 달, 두 달이 흐르던 어느 날 -

선생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오빠와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아빠가 학원비를 제때 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체벌의 이유는 얼마든지 쉽게 만들어졌다.


공부방에 늦게 왔다는 이유,

책을 바로 꺼내오지 않았다는 이유,

때 묻은 옷을 입고 왔다는 이유,

신발끈을 제대로 묶지 않았다는 이유 …



무릎을 꿇은 채 의자를 들고

종일 버텨야 하는 날이 이어졌고,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온몸을 떨면서도

버티고 또 버텼다.

의자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또다시 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열댓 명의 시선 앞에서

수치심은 어린 숨을 틀어막기에 충분했다.






울면 또 맞았고,

그렇게 울음을 삼키는 날들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 한 번만 가게 해달라고

잘못했다고 빌어본 날도 있었다.


절뚝이며 화장실로 기다시피 가,

그제야 꾹 눌러왔던

소리 없는 울음을 내뱉었다.


손톱을 다 물어뜯으며,

“나오라”는 고함이 들릴 때까지

거기서 버티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조용히 문제를 풀고 있는

그중 제일 앞에 위치한 책상에 엎드린 채,


선생님이 행거에서 꺼내 온

굵은 나무 몽둥이로 수십 대를 맞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날도 있었다.


허리부터 무릎 뒤까지,

정상적인 피부색으로 남아있던 적이 거의 없다.


보라색, 파란색, 빨간색.

형형색색으로 얼룩진 몸을 가지고,

다리를 절며 다니던 나.

그게 일상이 되었다.



아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린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다.


절뚝이며 걸어오던 나를 보고

아빠가 다가와,

바지를 벗기고 멍든 다리를 살폈다.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약을 발라주었다.


약을 발라주던 따뜻한 그 손길.

그건 돌봄이었을까,

침묵이었을까.


묘하게 뒤틀린 사랑의 형태는

어린 나를 더 부서지게 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