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마주하기 두려운 어느 날에 —
나는 피노키오다.
한낱 어느 목수가 외로워 만들었다던
그 외로운 나무 인형.
사람이 되기 위해 정직해야 했고,
코가 길어지는 벌을 감당해야 했던 존재.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그 조건이
내게 처음으로 씌워진 ‘존재의 자격’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정직한 자에게 늘 관대하지 않았다.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말하기 어려운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거짓말을 하지 않기보다—
진심을 말하지 않기를 택했다.
진심은
벌을 주진 않았지만,
늘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생각했다.
존재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 걸까.
그 물음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대답을 들을 곳도,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저,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암묵적인 룰처럼—
세상은 늘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 기준에 닿지 못하는 나를
계속해서 자책했다.
그렇게 자책하며 버텨온 날들 끝에—
살아보니 알겠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걸.
“괜찮아.”
“밥 먹었어.”
“요즘 행복해.”
“죽고 싶지 않아.”
나는 그 말들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사람처럼 살아보려 애썼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직했다.
너무 정직해서—
이 고통을 견디게 되었다.
모른 척하고
지나치는 법을 몰라서,
결국 이 고통을
끝까지 들여다보며 살아야 했다.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이 아니다.
이쯤 되면 ‘다시’라는 말조차
의미를 잃어버릴 만큼,
몇 번이고 반복된 시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고 싶다는 충동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약을 삼킬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버텨야 하는 모든 일상이
이젠, 지겹다.
아무리 잠을 자도
아무리 시간을 흘려보내도
삶은 늘
똑같은 무게로 되돌아왔다.
비슷한 하루,
비슷한 무기력,
비슷한 통증.
그러다 어느 순간,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일보다
‘죽어야 할 이유’를 찾는 일이
훨씬 더 쉬워져 있었다.
나는
코가 길어지는 대신,
가슴이 찢어졌다.
모든 기억을 품은 채 살아 있는 인형에게—
사람이 된다는 건,
고통을 끝까지 자각하며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문득 떠오른다.
어느 유명인의 유서.
“왜 죽느냐 물으면, 지쳤다고 답하겠다.”
그 말은 너무도 담담해서,
더는 절규조차 남지 않은
한 사람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을 기다린다.
극단적이지도,
격렬하지도 않은—
아주 하찮은 저항처럼,
그저 모든 것을
조용히 내려놓고 싶다는 바람.
하지만 동시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있고,
여전히 하루를 견디고 있으며,
무너지지 않은 채
이 문장을 끝내고 있다.
이것은,
죽음을 말하는 유서가 아니다.
살고 싶은 마음조차 잃어버린
한 피노키오가 남긴—
정직한 고백이자,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애틋한 몸짓이다.
진실을 말해도 받아들여질 날,
언젠가는 오겠지.
진심이 울리는 세상이
언젠가 내 앞에 펼쳐지겠지.
이 마음을 안고,
저는 오늘도 써 내려갑니다.
저를 위해,
숨은 이를 위해,
언젠가 빛날 모두를 위해—
상처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 위로 말이
내려앉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문장을 꺼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