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빨강 세모난 수박
사과 끝. 이제 수박주세요!!!
평상시 콩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사과다.
어린이집을 아빠 직장 근처로 다닐 때는 아침을 먹기 힘들어
2년 넘게 사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였고,
집에서 밥 먹고 항상 후식으로 사과를 먹어 왔으니 어린이집에서 먹는 점심 말고는
아침과 저녁식사 후 하루 2번은 사과를 먹어왔다.
만 6년 정도 되는 세월 동안 아빠가 평생 먹어온 것보다 많은 사과를 이미 먹은 셈이다.
과자 같은 다른 어떤 간식보다 사과가 우선이요,
밥은 걸러도 사과는 꼭 먹어야 하는 녀석이라
냉장고에 사과가 없기란 우리 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콩이가 먹어치우는 사과의 양이 대폭 줄어드는 계절이 있다.
수박이 나오는 7~8월 여름이다.
수박이 제철과일로 등장하기 시작하노라면
콩이의 애정은 수박으로 싹 쏠리는데
그 정도는 과히 사과라는 녀석이 서운해할 만큼이다.
물론 여름이라고 사과를 아예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1차 후식은 사과이지만, 그 양이 평상시에 비할바가 아니다.
꼬마 사과는 커녕 꼬꼬마 사과로 준비해도 1개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긴다.
그 다음 외친다.
"사과 끝. 이제 수박주세요!!!"
수박이 없으면 식사 끝이 아니다.
마침 남은 수박이 몇 조각 안돼서 수박 대신에 사과에 시리얼까지 줘도 결국엔
"아빠 이제 수박이요!!!"
주말에 가끔씩 피곤해서 소파에서 잠시 쉬고 있을라치면,
점심밥을 다 먹은 녀석이 어김없이 달려온다.
"아빠 수박 어딨어??"
처음엔 수박을 분해해서 껍질을 잘라내고 씨를 하나도 남김없이 골라내고
네모반듯하게 잘라서 준비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니 이 녀석이 다른 곳에서 수박을 먹을 때 혼란스러워했다.
원래 수박에는 씨가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다른 데서 먹을 때는 이상하게 검은색 작은 씨앗이 있는 게 아닌가.
또 어떤 수박은 초록색 검은 줄무늬 껍질도 있네..
발달이 느린 딸에 대한 아빠의 과잉보호 탓이었다.
뭘 골라내면서 음식을 먹기 힘든 콩이의 능력치를 생각해서 그랬던 것인데
오히려 녀석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다.
수박의 본래 모습을 모르고, 수박을 어찌 먹을지 몰랐다.
7살 여름부터는 수박을 껍질째 세모 모양으로 잘랐다.
비로소 수박이 수박다워졌고, 뼈를 발라내 듯 수박을 매번 발골해온 아빠의 수고도 줄었다.
때로는 씨를 골라내고는 아빠한테 자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초콜렛이나 되는 양 일부러 씨를 골라 씹어 먹다가 다혈질 아빠한테 버럭 당하고
"아빠, 얼른 미안하다고 해!"라고 하기도 하지만,
비로소 이게 맞는 길인 것 같다.
입안의 씨가 있는 감각을 느끼고,
혀를 굴려 씨를 고르고,
입술과 혀를 함께 사용하여 입 밖으로 씨를 배출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이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느리지만 연습하고, 느리지만 발달하고 있는데, 느리지만 발달할 것인데
아빠가 그걸 방해하고 있었다니..
참 자격 없다.
여름이 끝나갈 때면 수박이 싱싱한 게 없고, 맛도 별로일 것이다.
매년 콩이도 그 맛의 변화를 느낀다.
이상하게 수박이 맛 없다.
아빠한테 다른 수박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수박도 이상하게 맛이 없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갈 것이고,
콩이는 다시 사과를 즐겨 먹을 것이고,
그러다가 1살을 더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