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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l 01. 2021

#3 콩이가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

콩이는 느려. 그러니까 기다려 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아빠

항상 나를 우리 예쁜 콩이라고 불러서 어렸을 때는 내 이름이 '우리 예쁜 콩이'인 줄 알았어.

맨날 맛있는 거 해주고, 재밌는 장난감도 사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난 엄마 아빠가 정말 좋아.

엄마 아빠 딸인 게 너무너무 행복해.


근데 있잖아..

내가 어린이집 친구들이나 동생들보다 잘 못하는 게 많잖아..

그럼 아빠는 몇 번 참다가 화내고..

나는 막 울고..


그게 있잖아..

다 이유가 있어.


아빠 있잖아.. 이상하게 손발이 내 맘대로 안 움직여. 눈도 잘 안 보이고..

선생님이 점이랑 점을 선으로 긋는 걸 알려주는데 

나는 점 2개가 한꺼번에 안 보여서 선 긋기가 너무 어려워.

그리고 친구들은 색연필을 손가락으로 잘 잡는데 나는 주먹 쥐고 잡는 게 더 편해. 

손가락으로는 잘 못 잡겠어.

그림에 색칠을 하라고 하는데 어디에 얼마만큼 색칠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

경계선도 잘 모르겠고 사실 그 그림이 무슨 그림인지도 잘 모르겠어.


아빠 있잖아.. 나는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어.

엄마 아빠나 놀이센터 선생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다 들어주는데

친구들은 내 말은 안 듣고 자기들끼리 못 알아듣겠는 말을 계속 해.

무슨무슨 놀이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친구들이 말해줘도 난 이해를 못하겠어.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참 어려워.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놀아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어.


아빠 있잖아.. 나는 언덕길이랑 그네가 너무 싫고 무서워.

언덕 내려갈 때나 그네 탈 때 아래로 막 떨어질 거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막 울고 싶어.

그래도 언덕길 내려가는 것은 아빠가 앞에 서 있어주면 내가 발을 다다다다 해서 내려갈 수는 있는데

그네는 아빠 무릎에 앉아서 타도 무서워.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저 뒤 언덕길은 무섭다


아빠 있잖아.. 나는 옷 입는 거랑 양말 신는 게 너무 어려워.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고 어디고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잘 모르겠어.

아빠는 옷을 뒤집어 입었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데 왜 뒤집어졌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

양말 발 뒤꿈치가 아래로 가게 하라고 하는데 나는 어디가 아래인지 잘 몰라.


그리고 아빠.. 내가 쉬야 실수를 하잖아..

그게 내가 일부러 옷에 쉬야를 싸는 게 아니라 쉬야가 몰래 나오는 거야.

다른 데서는 안 그러는데 이상하게 어린이집에서는 쉬야가 몰래 나와 버려.

병원 선생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했잖아 아빠.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아빠 나도 동생들보다 뭐 막 못하고 이런 거 창피한 거 알 거 같은데

어쩔 수가 없어.

손발도 내 맘대로 안 움직이고, 눈도 내 맘대로 안 보이고

나도 화가 나고 짜증이나.


아빠!! 나 그래도 친구들보다 책도 잘 읽고, 어린이집에서 점심먹고 나면 낮잠도 잘자.

남들보다 느려도 괜찮다고 했잖아. 아빠는 무조건 콩이 편이라고 했잖아.

아빠는 어른이니까 아빠가 더 참고 나한테 소리 지르거나 화 안 냈으면 정말 좋겠어.

나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아빠 딸이잖아.




콩이는 엄마 아빠를 좋아한다.

외부 사람에 대한 애착이 적으니 또래 녀석들에 비해 엄마 아빠에 대한 애정이 깊다.

콩이는 5살 초반까지 "아빠, 우리 예쁜 콩이가.."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보통 "아빠, 콩이가..." 이렇게 말을 할 텐데, 콩이는 자기 이름이 "우리 예쁜 콩이"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콩이는 시지각이 좋지 않아 시선 이동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선긋기나 색칠하기 같이 시선과 손이 협응 하여 같이 이동해야 하는 작업은 콩이에게 어렵기만 하다.

약시에 원시와 난시도 있는데 6살 때 우연히 발견해서 도수가 엄청 높은 교정 안경을 쓰고 다닌다.

안경을 쓰니 약시가 조금 교정되어 앞이 잘 보이는 모양인지 잘 때랑 목욕할 때 말고는 

안경 쓰라는 말을 안 해도 스스로 항상 안경을 찾는다.

안쓰럽다.


언어가 상호 소통의 언어가 아니고 일방적이다. 

자폐 성향의 아동 중 발화 수준은 우수하나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다.

친구들과 자연스러운 핑퐁 대화가 될 리 만무하다.


콩이는 내리막길이 무서운 모양이다. 언덕에서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다. 

그래서 찾아낸 놀이가 엉덩이 미끄럼틀이다. 언덕길을 보면 주저앉아 미끄럼 타듯 내려오려 한다.

그네는 더 무섭다. 발이 아예 땅에 닿지를 않으니 더 그러한 것 같다.


콩이는 옷 입기와 양말 신기를 어려워한다. 앞뒤 좌우 구분이 어려우니 그럴 만도 하다.

옷은 제대로 다시 입혀주고, 양말은 어찌 됐든 발만 끼우면 그대로 두면서 말로만 설명해 줄 뿐이다.


제 녀석에게 다 맞춰주는 발달센터에 비해 어린이집은 어려운 환경인가 보다.

7살인데도 어린이집에서 소변 실수가 잦다. 

두 군데 대학병원에서 신체 기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하니 어린이집 특유의 스트레스 탓인 듯하다.

또 안쓰럽다.


콩이는 말한다. "아까 아빠가 화 내서 기분이 안 좋았어." 라거나 "화내지 마. 나도 기분 안 좋아."

언어 수준에 비해 고차원의 표현이다.

아빠가 화내는 게 녀석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미안하다. 안쓰럽고 미안하다.


남들보다 느려도 된다고 했다. 무조건 콩이 편이 되어 준다고 했다.

아빠가 부족하다.

미안하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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