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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l 07. 2021

#6 아빠와 딸내미의 미니멀 캠핑

단출하게다녀온 캐러반 캠핑 이야기

침대 있는 새로운 공간을 좋아하는 녀석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 주고 싶어

집에서 멀지 않은 시립 캠핑장의 캐러반을 예약했다.

발판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상당한 높이의 침대,

쫙 펴면 침대로 변신하는 소파,

레버를 누르고 당겨야 열리는 냉장고,

작은 공간 구석구석을 차지한 수납장,

비밀의 집 같이 언뜻 눈에 띄지 않는 화장실 등등

캐러반 내부의 구성은 분명 녀석이 좋아할 만한 공간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캐러반 캠핑


역시나 녀석은 캐러반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침대를 찾았다.

발판을 딛고 올라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엎드렸다가 발을 쿵쿵 굴렀다가 제 혼자 아주 신이 났다.

침대 끝에서 엉덩이 미끄럼틀 타듯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하고 다시 발판을 딛고 올라갔다가 거꾸로 내려오기도 하고, 1년 전만 같아도 혼자 오르내리기도 힘들었을 침대를 놀이기구 삼아 놀고 있다.


잡아당기면 침대로 바뀌는 소파도 신기했는지

올라가 비스듬히 기대어 동화책을 봤다가,

점프하듯 뛰어내렸다가,

다시 소파로 만들어 트램펄린처럼 방방 뛰어보기도 하면서

침대소파 역시 놀이기구가 되었다.


그 다음은 냉장고..

레버를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손으로 잡아당겨 열리는 것도 신기하고

닫힐 때 레버 때문에 딸칵 소리가 나는 것도 신기했는지

문 열고 물병 하나 넣고 문 닫고,

문 열고 과일 넣고 문 닫고,

문 열고 과자 넣고 문 닫고,

문 열고 칫솔도 넣고 문 닫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냉장고에 안 넣어도 되는 것까지 차곡차곡 정리한다.


캐러반 끝에 비밀의 문 같은 곳을 열어보니 화장실이다.

아주 작은 욕조를 반가워한다.

녀석은 매일매일 욕조 목욕을 해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것으로 안다.

세면대와 변기도 작은 공간에 알차가 다 들어가 있다.


캐러반 내부를 탐험하며 한참을 더 신나게 노는 녀석이다.

이 더운 날 아빠가 천장에 붙은 에어컨을 뒤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땀을 꽤 많이 흘려야 했던 것 빼고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 없었다.

짐을 푼 지 1시간 30분을 넘겨서

녀석의 캐러반 탐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차에서 녀석의 킥보드를 빼내어 캠핑장 옆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잘 포장된 길을 킥보드로 씽씽 달리는 녀석이 보기 좋다.

해가 넘어가면서 하늘과 호수는 노을로 물들고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엄마가 따라오지 않았으므로 이번 캠핑은 미니멀리즘이다.

옷가지를 딱 1박 2일에 필요한 만큼(녀석의 잠옷과 새 옷 1벌, 아빠는 잠옷만 1벌)만 챙겼고,

로션도 1가지, 세면도구는 샴푸 겸용 바디워시 1개와 칫솔 치약이면 끝.

캠핑의 꽃이요, 목적이라는 고기를 챙기지 않았다.

고기를 구우려면 양념, 채소, 불판 등등 이것저것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준비물이 많다.

고기만 굽지 않아도 캠핑은 대폭 간소화될 수 있다.

녀석은 고기를 딱히 좋아라 하지 않는다.

특히 불판에 구워서 바로 먹는 고기에 대해서는 더더욱 흥미가 없다.

안타깝지만 아직 그 지글지글 소리와 고소한 냄새와 침샘 자극하는 그 비주얼을 알지 못한다.


저녁 메뉴는 방울토마토 계란 볶음, 다음날 아침 메뉴는 김 계란 비빔밥으로 정했다.

준비물 최소화 전략이다.

생수와 방울토마도 1팩, 계란 6개, 김가루, 햇반 2개, 우유 작은 거 1팩, 치즈 2장, 생오이 1개에

후식용으로 블루베리 1팩..


캐러반 안의 인덕션을 켜고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갈라 프라이팬에 넣고 우유를 약간 붓는다.

계란 3개를 깨어 넣은 후 휘저어 어느 정도 익으면 치즈 1장을 넣는다. 또 휘젓는다.

그 사이 전자렌지에는 햇반 1개를 돌린다.

캐러반에 비치된 투박한 접시에 방울토마토 계란 덮밥을 담고, 생오이를 잘라 반찬으로 놓으니

아빠와 딸의 훌륭한 저녁밥상이 완성된다.

콩순이 동요를 들으면서 "캐러반에 가면, ~~도 있고" 노래를 하며

집에서와는 색다른 저녁식사를 한다.


여행할 때면 보통 한 가방 챙기던 녀석의 장난감과 보드게임을 이번에는 생략했다.

대신에 캐러반에서의 밤에는 차에 가지고 다니던 동화책을 꺼낸다.

소파침대에 푹신한 베개를 받치고 나란히 기대어 앉아

동화책 속의 주인공으로 역할극을 하며 한참을 놀았다.

집에서도 함께 책을 많이 읽는데, 그래도 캠핑이라고 많이 다르다.  

위윙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와 주변의 다른 캠핑 가족의 크지 않은 대화 소리는

지루하지 않고 적막하지 않아 나쁘지 않다.


자기 전에 콩이는 엄마랑 영상통화를 해야겠다고 한다.

하루 떨어져있다고 그새 서로 애틋한가 보다.

핸드폰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어마어마하게 통통하다.

오랜만에 내 얼굴을 보니 더 통통하다.

"아빠, 얼굴이 통~통하다!"

나만 느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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