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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S Apr 03. 2021

또 카드를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지갑에서 발견한 지난 삶의 흔적들



나는 도서관 가는 걸 좋아한다.

대출한 책의 열에 아홉은 표지만 보고 반납하지만 정말 꾸준히 간다. 책의 제목과 표지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인사이트를 얻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거주지역을 옮긴 지 11개월 만에 드디어 집 근처 도서관의 대출증을 발급받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진작에 대출증을 만들러 갔겠지만 코로나와 리모델링으로 인해 작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도서관은 휴관 상태였다. 오랜 도서관 출입 공백기를 깨고 발급받은 대출증을 보며 기뻐하고 있는데 문득 떠올랐다. 잔뜩 꽂혀있는 카드 때문에 닫히지 않는 불쌍한 나의 지갑이.



카드가 많이 갖게 된 건 순전히 '여행' 때문이다.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할 당시, 하나뿐인 카드를 잃어버려 고생했다는 여행기를 봤다. 심지어 ATM 기계가 카드를 먹어버렸다는 무시무시한 괴담도 봤다.

설사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더라도 여행 일정과 멘탈에 타격을 받지 않도록 주거래 은행 계좌당 2개 이상의 카드를 발급받았다. 해외 ATM 사용 수수료, 결제 수수료가 면제되거나 항공사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는 카드들로 엄선했고 비자, 마스터의 비율도 맞췄다. 각 혜택에 맞춰 결제용과 출금용 카드도 정해놓았다.


영롱.·´″˚☆


보유하고 있는 해외여행용 카드다.

왼쪽부터 2010년 중반에 해외여행 좀 다닌 사람들이라면 가지고 있는 하나은행 '비바 체크카드'와 같은 계열의 '비바G 체크카드.'

ATM기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무용지물인 씨티은행의 '체크+ 신용카드.'

신한은행의 해외 결제 수수료가 페이백 되는 '스마트 글로벌 체크카드',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이 되는 '욜로 체크카드', 마지막으로 국내에서만 사용하지만 백업으로 가지고 있는 '딥 드림 체크카드'다.


Where's next?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 대출증이다.

본가는 서울 도봉구와 노원구 경계에 있고, 제주 여행하다가 그대로 눌러앉아서 2년 동안 살았었고, 지금은 안동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보유한 도서관 대출증은 안동, 도봉구, 노원구 그리고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제주 동녘도서관 대출증까지 총 4개다.


... and more

지갑 :  그냥.. 죽...여...줘..


1년마다 직업과 거주지를 바꾸며 살아온 흔적이 지갑에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카드들을 하나둘씩 지갑으로 유배를 보낸 게 저 지경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휴대성이 좋은 목걸이형 지갑을 주로 휴대하고 다녔기 때문에 지갑의 존재 자체를 거의 잊고 지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꺼내 본 지갑에 잘 보존(?)되어 있는 방랑의 흔적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카드를 만들던 그 당시는 여행만이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여행을 삶의 등불로 삼았더니 포기하게 되는 것이 많았었다. 경력, 돈, 인간관계를 뒷전으로 두고 이대로 영영 현실 세계에 발 붙이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두렵고 고통스러웠던 방황의 시절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기도 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장했고, 그 시간들을 견디고 얻어낸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항상 과거를 떠올리면 이렇게 감상적이게 된다. 하하.


여러분들도 지갑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혹시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할 물건이 지갑 깊숙한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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