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한 개의 도전
사실 고백하자면 작년 1월부터 꾸준히 발레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올해 3월까지 이어져 왔던 걸 보니 나름 꽤 재미를 붙인 것 같기도 하다. 횟수는 아쉽지만 안전하게 주 1회. 늘지 않고 고만고만한 실력으로 가늘고 길게 연명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재활치료를 받는 기분이랄까. 이걸 2월 도전과제로 소개한 이유는 언젠가 한번 발레에 대한 소개 글을 써보고 싶기도 했고, 사실 펜싱을 한 달만 한다는 걸 계속 이어오게 되면서 발레와 같이 병행하다 보니 다른 활동적인 도전과제를 시도할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번 2월엔 발레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했다. 사람은 어떤 걸 보고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걸까? '아름다움'이란 절대적인 가치인가? 플라톤은 이데아를 만들어 그 근원을 명명했다. 누구는 아름다움이 상대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가치와 원천에 대해 아직도 논의할 수 있지만 그보다 우리는 시각적으로 눈앞에 놓인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아름다운 것을 보면 뇌가 활성화된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발레는 그 기본 형식들에서 우아함을 극강으로 강조했다.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했다거나, 프랑스 왕궁 사교 무용으로 전파됐다거나 하는 내용은 넘어가도록 하자. 여하튼 초보들은 이 발레라는 댄스가 귀족 상류층에서 향유하던 댄스 형식이 이어져오며 무대 위로 올라서게 되는 역사 정도만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발레는 극도로 형식적이고 거기에 따른 이상적인 형태가 존재한다. 특히 잘 알려진 토 슈즈를 신기 위해선 발 등이 기이할 정도로 곡선을 그려야 하는데, 우선 나는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발등뿐만이 아니다. 자세를 잡을 때 이상적으로 꽃꽂이 서있어야 하는 허리 요추, 어깨는 완벽하게 벌어져야 하지만 가녀리게 모아져야 하는 갈비뼈, 약간 들린 머리와 따라 올라와야 하는 턱 선, 이상적인 시선처리, 완벽하게 찢을 수 있는 다리, 번듯하게 직선으로 올라오는 다리선 등등. 숙달된 프로들만이 할 수 있는 포즈들은 자연스러운 자세가 아니지만 그 만들어진 선만이 주는 몸의 우아함이 있다. 물론 몸에 익숙해질 정도의 수준을 터득하기 위해선 수년의 훈련이 필요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어렸을 때 나는 잠깐 발레는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내 기억력이 그렇게 좋지도 않을뿐더러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에 남아있진 않고 옛날 옛적 전해 들은 이야기로 그렇다고 만들었다. (내 이야긴데 내가 기억나지 않다니. 사실 나는 기억상실증이 아닐까? 요즘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어렴풋한 로망만이 머릿속에 흔적 기관처럼 남아있다. 내 몸으로 그 상상만 하던 우아한 포즈나 자세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말이다.
그래, 내가 백조의 교훈을 잊고 있었다. 우아한 자세엔 물아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가 발레가 운동이 안될 것 같다고 했나.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과거의 나를. 나는 거울보고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물론 자세와 동작이 어려운 거야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아무나 발레리나가 되지 못하고 전문가가 존재하며 사람들이 돈을 주고 그 공연 티켓을 구매해 보러 가는 게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이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발레 수업이 끝나고 나면 목 뒤로 땀이 흐르고 있다. 물론 수업에 제대로 참여해야 땀이 흐른다. 발레는 헬스장에서 러닝 머신을 뛰는 거나 사이클을 타는 것처럼 유산소를 별도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끔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았다거나, 스트레칭을 설렁설렁한 경우엔 땀이 흐르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이 때문에 땀이 흐른 날이면 뿌듯하기도 하다.
자세, 특히 코어에 힘을 주고 엉덩이에 힘을 주고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줘 다리 안쪽을 붙이는 자세는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하는 자세다. 코어 힘이 없는 경우 발레 동작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기본적으로 발레는 근력이 필수적인 운동이다. 순간 정신을 놓으면 다리도 풀어지고 자세도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모든 운동엔 집중이 필요하듯 발레도 모든 순간 집중이 필요했다.
그래, 우선 내가 발레복을 사기 위해 검색하게 된 계기를 말하는 게 좋겠다. 나는 원래 발레복을 입을 생각이 없었다. 첫 설명을 들으러 갈 땐 선생님도 굳이 발레복을 챙겨 입을 필요는 없다고 했고. 그저 몸동작과 자세가 잘 보이는 붙는 필라테스 복장이나 레깅스, 달라붙는 티셔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 굳이 발레 연습 복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도 맨 첫 수업 땐 발레 복장 챙겨 입기 쑥스러워 유난스럽다고 생각돼 필라테스 옷을 챙겨 갔다. 그런데 웬걸, 학원의 모든 수강생들이 모두 발레 연습 복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이건 학원마다 상황이 다를 것이다. 여하튼 나는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일관된 복장을 입고 있으면 약간 없던 용기가 피어남과 동시에 뭔가 나도 입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물론 아무도 압박을 주진 않는다.) 아니, 그보단 내가 유행에 뒤처진다는 느낌일까.(그래 이게 더 적합하겠군.) 결국 세 번째 수업만에 발레복을 입고 참석했다.
발레가 이삼십 대 여성에게 특히 인기 있는 운동 중 하나인 이유는 절반 이상이 옷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옷 자체 때문이라기보단 연습실 거울에 예쁜 발레 연습복을 입고 누가 봐도 마르고 예쁜 몸을 전시하는 SNS 트렌드 때문이다. 발레 슈즈, 타이즈, 레오타드, 그리고 랩스커트. (사실 진짜 프로들은 랩스커트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원래는 골반 방향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미생들이 발레복에 민망해하기 때문에 살짝 덜 민망할 정도로 착용할 수 있게끔 나오게 되었다고) 요즘 색상은 또 파스텔 계열로 얼마나 부드럽고 여러 종류로 예쁘게 나오는지, 한 번 사게 되면 끝도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랩스커트만 사나, 랩스커트 색상에 맞춰야 한다고 레오타드도 깔 맞춰줘야 한다. 여름과 겨울 레오타드는 또 노출도가 달라야 한다. 겨울이면 근육을 위해 워머도 사야 한다. 욕심 내다보면 끝도 없는 게 도구라더니 발레에는 복장이 복병이었다. 여하튼 그 예쁜 발레복으로 발레 연습실에서 발레 하는 자세를 찍는 게 SNS 사이에서 유행인가 보다. 물론 발레 동작보다 라이프스타일 혹은 단순한 몸매 전시 쪽에 가까울 것이다. 한때 돌던 필라테스 유행과 유사한 계열인가. 이게 바로 SNS를 하지 않은 내가 발레복을 검색하게 되면서 느낀 점이었다. 이게 유행도 빨리도 돌고 사라져서 아직도 유행 중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발레복 가격이 착한 것도 아니다. 특히 레오타드는 기본 6-7만 원 이상이고 좀 욕심 내다보면 13만 원 이상 훌쩍 넘어간다. 랩스커트도 마음에 드는 색상 계열을 사다 보면 여러 장 사야 하고, 타이즈도 보풀이 일거나 실이 뜯어지는 경우를 고려해 여러 장 꾸준히 사야 한다. 단출한 한 복장으로 버티자니 다른 수강생들 옷이 또 너무 예뻐 보이는 거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지르진 않았다.)
난 특히 레오타드에 불만이 많았는데 왜냐하면 단품 치고 가격이 너무 세다. 거기다 사이즈도 천차만별이라 한 번은 한국 브랜드에서 큰 사이즈로 샀는데도 나에게 맞지 않은 거다. 이게 통이 안 맞는 것도 아니고 상체 높이가 안 맞으니까 방법도 없었다. 그냥 어깨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이미 한번 교환한 터라 (이미 이전에 한번 내가 사이즈를 잘못 주문한 줄 알고 제일 큰 사이트로 교환 신청을 한 상태였다.) 반품은 불가능했다. 도대체 발레인 들은 몸매가 어떻게 된 거냐며 한참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지금 생각해도 돈이 아깝긴 하다. 물론 레오타드를 입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이왕 다른 거 챙겨 입을 때 한꺼번에 같이 챙겨 입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레오타드의 특수 기능도 존재했다. 레오타드의 특이한 점은 별도 상체 속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게 비싼 이유일까. 맨 처음 레오타드를 검색할 때 다들 하나같이 등이 훤히 파여서 속옷은 어떻게 착용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했는데 그제야 발레 레오타드는 따로 상의 속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놀라워라. 등이 훅 파진 레오타드는 온몸이 약간 압박되는 느낌도 있지만 그만큼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편안함도 있었다. (물론 화장실을 갈 땐 불편하지만 수업 한 시간 화장실 안 가는 건 문제도 아니니까.)
거울의 내가 바로 멋있어지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발레는 그 운동 자체에서 주는 멋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 역사라던가 엄격한 자세라던가 예쁜 복장이라던가 어디서 나오는 원천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1년이 넘도록 욕심이 나서 꾸준히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3가지 도전 기준 원칙 - 원칙 3. 멋져 보이는 것'에 아주 부합한 운동이긴 하다. 물론 1년이 지난 지금도 내 자세는 그다지 프로처럼 멋있지 않고, 나는 아직도 다리를 180도 찢을 수 없으며, 내 몸매에도 급격한 변화는 모르겠지만 의식적으로 코어에 힘을 줘 허리를 꼿꼿이 세울 수 있다는 점이나, 발레를 하고 있다는 내 라이프스타일이 멋있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아직도 가끔 발레 자세를 잊지 않기 위해 혼자서 자세를 잡곤 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릴 때 왠 미친 여자가 발레 어설픈 1번 포즈를 하고 있으면 아마 그게 나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펜싱도 그렇고 발레도 프랑스어를 기본 용어로 사용하는데. 역시 독일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를 배웠어야 했어.
아쉽게도 지금은 다른 유사한 운동 도전으로 3월을 마지막으로 발레를 쉬게 되었지만, 언젠가 다시 하고 싶다. 내가 발레의 그 멋있음을 닮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