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추천도서]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김수현)
제3부 - 07 실망해도 직장인
“너는 본사에서 버틸 생각을 해야지! 아니, 승진이 코앞인데 지방으로 전근신청을 했다고? 너 그래가지고 도대체 언제 승진하려고 그러는 거야!”
“아버지, 전 더 이상 본사에서 고생하며 일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저 좀 그만 내버려 두세요!”
지난 몇 년간 나는 본사에서 일하며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이렇게 본사에서 계속 일만하다간 내가 정말 어떻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회사에서 나를 이번에 승진시키고 본사에서 몇 년 더 묶어두려 한다는 거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바로 승진을 미끼로 쓰는 회사의 당근과 채찍 전략이었다.
그런 나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우리 회사 인사를 담당하는 직원을 찾아갔다. 나는 그를 붙잡고 내가 이번에 승진 못해도 좋으니, 제발 나를 본사 밖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했다. 그렇게 나의 간절한 부탁이 통했던지(?), 인사담당 직원은 나를 본사 밖으로 발령을 내주었다. 물론 동시에 내 승진도 없던 거로 처리됐고.
그런데 내가 스스로 승진을 포기하고 지방근무를 신청했다는 걸 하필 아버지가 아시게 되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다. 아니, 어떤 직장인이 승진을 코앞에 두고 이렇게 도망갈 수 있냐는 거였다.
사실 내가 입사한 회사는 아버지가 예전에 근무하셨던 회사였다. 그런데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셔야 했다. 그렇게 전 회사에 대한 미련이라도 남으셨던 건지, 아버지는 아들이라도 자신이 이전 회사에서 못 이루었던 꿈을 대신 이루어줬으면 하셨다.
그런데 자신의 바람과 다르게 아들이 회사에서 스스로 승진까지 포기하고 지방으로 가겠다고 하니 화가 단단히 나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이번 일로 아버지에게 죄송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아들로서 아버지가 못 이루셨던 꿈을 대신 이뤄드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니,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지,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은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지금 내 몸과 마음은 본사에서 버틸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 나도 내가 좀 완벽했으면 좋겠다. 내가 완벽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면 분명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을 텐데! 그러나 나는 완벽하지 못했고 아버지에게는 실망만 안겨드릴 뿐이었다.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오랜 오해는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며 자신을 옭아맨다.”
“물론 소중한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서 자신을 짓눌러서는 안 된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라는 제목의 책을 폈다. 책의 저자인 김수현 작가는 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소중한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은 문제가 없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 자신을 짓눌러선 안 된다고. 작가의 말에 나도 공감한다. 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본사에서 억지로 버티며 몇 년을 더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에 타인의 실망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야 한다.”
“때론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실망시킬 용기도 필요하다.”
나도 내가 완벽한 아들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를 정말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정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바라는 완벽한 아들의 모습이 아니고, 그런 모습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내게 바라는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실망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렇게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아버지를 더 실망시켜 드리고 있는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누구도 당신의 최선에 실망할 자격은 없다.”
2년 전 내가 본사에 남지 않고 스스로 승진을 포기했던 그 일에 대해 누군가 후회 하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거다. 왜냐면 당시 지방전근은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최선이었기에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설날이 다가온다. 아이고,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가 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갑갑하다. 분명 아버지는 이번에도 본사에 언제 올라올 거냐고 나를 아주 달달볶으실 거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죄송하지만 내 안에는 소중한 사람을 언제든 실망시켜드릴 용기가 버젓이 숨 쉬고 있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 하던 나는 나만의 호흡으로 용기 있게 숨을 쉬어낼 거다. 그렇기에 누구든 나를 질식시킬 수 없다.
나의 직장생활 가운데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나갈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부족해 보이는 직장생활일지라도, 나는 나의 직장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래, 비록 나의 직장생활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실망시킬지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영희 씨는 잘 지내고 있을까?
(2년 전)
이영희: 내일부터는 사무실에 세평 선배님이 계시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무언가 좀 이상해요.
김세평: 저도 마찬가지에요. 지금처럼 퇴근 길에 영희 씨를 필라테스 학원에 태워드려야만 할 것 같은데... 내일부터는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이상하네요.
이영희: 그것뿐인가요~ 점심시간에 세평 선배님과 늘 가던 곰카페는 어떻고요. 왠지 선배님 없이 저 혼자서는 곰카페에 가진 않을 거 같아요.
김세평: 왜요? 나름 점심시간에 회사로부터 잠시 피신해있기엔 거기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거 같은데...
이영희: 그렇긴 하지만 저 혼자서 가려니 왠지 슬플 거 같아서요. 선배님이 점심시간마다 해주시던 책 이야기도 그리워질 거 같기도 하고...
김세평: 영희 씨...
이영희: 괜찮아요. 나중에 가고 싶으면 백선배님이라도 모셔가야죠. 히히.
김세평: 미안해요. 지방으로 전근을 신청하기 전에 그래도 영희 씨에게 조금이라도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이영희: 헐. 전근 가시기 하루 전 이제야 사과를 하신다고요? 참 빨리도 사과하시네요!
김세평: 아아. 제가 생각해도 너무 늦게 사과하죠? 미안합니다!
이영희: 뭐 사실 저 대신 백선배님이 노발대발해주셔서요. 나름 대리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히히.
김세평: 그, 그렇군요. 백선배한테 엄청 혼나긴 했었는데...
이영희: 서운했던 거죠. 가장 좋아하는 후배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회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 거니까요.
김세평: 에고... 아무튼 백선배 그리고 영희 씨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저는 저만의 직장생활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의도치 않게 주위 분들에게 실망감만 안겨드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이영희: 흠... 선배님. 어느 책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누구도 당신의 최선에 실망할 자격은 없다.'
김세평: 네? 당신의 최선에 실망할 자격은 없다?
이영희: 얼마 전에 읽었던 김수현 작가의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라는 책에 있던 문구예요. 그 책에는 이런 말도 있더군요.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에 타인의 실망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야 한다.'
김세평: 타인의 실망을 받아들일 용기라...
이영희: 선배님은 그간 자신만의 멋진 직장생활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오신 거잖아요. 그런데 그러한 선택들을 해 나가는 과정 가운데에는 어쩔 수 없이 주위를 실망시켜야만 상황도 있을 거고요.
김세평: 그, 그렇죠...
이영희: 그렇기에 지금은 선배님이 용기를 내셔야 상황인 것 같아요. 바로 타인의 실망을 받아들일 용기를요. 저와 백선배님은 선배님께 서운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운하다고 해서 선배님 본인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해요. 오히려 선배님께서 저와 백선배님의 서운함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통해 선배님만의 멋진 직장생활을 이어나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김세평: 영희 씨...
이영희: 어? 어느새 도착했네요. 선배님이 마지막으로 태워다 주시는 필라테스 학원..! 그동안 퇴근길에 저 태워다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김세평: 고생은 무슨 고생이에요. 오히려 감사했죠. 영희 씨 덕에 그간 제 퇴근길이 심심하지 않고 너무 재밌었습니다!
이영희: 히히. 저 그럼 이제 내릴게요. 지방 내려가서도 연락 주세요 선배님!
김세평: 저, 영희 씨!
이영희: 네?
김세평: 타인의 실망을 받아들일 용기······ 저 한번 더 내보려고 하는데요.
이영희: 헐. 저를 또 실망시키실 게 있으셨던 건가요?!
김세평: 네. 아직 하나 더 있었거든요... 저 영희 씨 좋아합니다.
이영희: 갑자기 무슨 말씀을······.
김세평: 영희 씨, 좋아해요. 그것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