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김창옥 강사님의 <지금까지 산 것 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를 통해 여러분과 직장생활 권태에 대해 이야기를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그럼 직장인 필독서 필사노트 <직필필> 시작하겠습니다!!
[1]
신은 직선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이 만든 것을 제외하고는 자연에서 만들어진 것 중에 직선은 없습니다. 다 부드러운 곡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일직선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성장 아니면 후퇴. 그렇게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 곡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조금만 미끄러져도 후퇴라고 판단합니다.
열정이 떨어졌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권태가 찾아왔을 때, 그런 삶은 거부합니다. 인정하면 정말 후퇴인 것 같아서요.
기억하십시오. 자연의 모든 것은 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섭리입니다. 권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마치 열정이 영원하지 못했던 것처럼요.
너무 빨리 물리치려고 하지 마세요. 삶의 권태가 찾아올 때, 더 이상 재미있는 것도 맛있는 것도 없을 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고민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악마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잘나갈 때는 고민을 하지 않거든요. 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고, 인생이 일직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생의 후퇴는 자연이 선물한 기회입니다.
성숙 없이 자란 사람하고는 대화가 어렵습니다. 항상 핑계를 앞세우고 수용하는 능력은 없으면서 과거의 영광만 찾는, 그런 꼰대가 되는 것이지요.
반복되는 삶의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을 겸허히 인정해 그 바탕이 된 힘으로 우리는 삶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사람이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관리를 하지 않아요. 몸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몸을 방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먹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모두 관리입니다. 정원을 망치는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는 거. 사람도 똑같습니다. 소중한 나를 내가 좋아하는 나로 성장시키세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올해에는 직장생활 가운데 독서와 자기계발을 열심히 병행하며 폭풍성장(?)을 한번 이루어보자며 다짐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중간점검을 해 보니, 폭풍성장은커녕 뭐 제대로 이루어낸 게 하나도 없더군요 ㅠㅠ
심지어 요즘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가? 뭐가 이리도 귀찮은 게 많은지, 독서도 자기계발도 그냥 손을 놓고 있네요 ;;
말 그대로 권태가 찾아온 거 같습니다. 열정도 많이 식은 거 같고요.
이런 제 모습을 보자니, 무언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뭐 어쩌겠습니까? 하하. 이것 또한 제 모습인 걸 말입니다.
사실 365일 내내 열정으로만 가득찬 것도 어찌보면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왜 열심히 가동하던 기계도 중간에 잠시 멈추게 하여 식혀주지 않으면 망가지거나, 심지어 폭발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직장인 여러분들 중 혹시 여러분만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다가, 최근에 권태가 찾아오거나, 열정이 좀 식으셨다면,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란 말도 있듯이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세요 ㅎㅎ
여러분의 잠깐의 휴식이 분명 여러분을 더 멀리 성장시켜줄 겁니다.
[2]
관계란 홀로서기와 더불어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둘은 반대의 개념이 아닙니다. 홀로 설 수 없는 사람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남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법을 모릅니다. 남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도 모릅니다. 온도 조절이 안 되어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고, 거리 조절도 안 되어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멉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많은데, 자신 보내고 혼자 뭘 해야 할지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로서의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자식들에게 먼저 손을내밀 수 있을 겁니다. 며느리와의 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아들도 결코 온전하게 인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변화해야 할 때 변하지 않으면 변질됩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익어야 할 때 익지 않으면 썩습니다.
부디 긍정적인 방향으로 무르익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소위 자식에게 뒤통수 맞았다는 분들의 단골멘트입니다.
이 말은 이미 당신의 사랑이 건강한 사랑은 아니었다는 방증입니다. 건강한 사랑은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 자체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습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내가 너한테 준 만큼 너도 나한테 뭘 줘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대개는 정서적인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성장하면 정서적으로 독립을 원합니다. 어른이 되려는 아이에게 보상을 바라면 아이는 제대로 독립하기 어렵습니다.
윤동주의 <십자가>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괴로움과 행복이 모순된 단어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만큼 사랑하는 대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아이의 존재로 모든 보상을 받는 것, 어쩔 수 없이 부모란 그런 역할입니다.
특별히 부모님과 자녀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에 대하여
김창옥 강사님께서 잘 정리해주신 것 같습니다 ㅎㅎ
한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3]
직장은 있는데 자기 길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직장은 없지만 자기 길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업보다 ‘가치’가 먼저입니다. 나와 내 길. ‘나에게는 내 길이 있는가?“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이 질문은 곧 ‘내가 가치있다고 느끼는 것이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건물이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사랑이 없고 그저 건물만 있다면 그때는 또 다른 고뇌를 알게 될 것. 월세는 안 들어오고 세입자가 골치를 썩이면. 물질에 대해 착각하지 마세요.
지금 스타트 라인에서 서서 ‘이게 내 길일까? 내 운명일까?’ 말하는 것 자체가 오류고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나에게는 ‘기술’이 없으니까요. 인간은 잘하지 않으면 즐거워질 수 없거든요.
그러니 일단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잘하기 위해서는 기능과 기술이 필요하죠.
비록 나의 길, 나의 가치가 아니었다 해도 10년을 쌓은 기능과 기술이 돈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공간과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시면 됩니다.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것이 아무리 행복해도, 개념없는 고객을 만나면 회의감이 밀려옵니다. 그러면 인생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단순히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업종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분명한 가치를 찾아가세요.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이 일을 할 때 행복한지요.
어떤 어려움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 길이 어두워 보여도 폭죽은 더욱 밝기에, 나만의 폭죽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맞다면 그 빛을 따라 어둠으로 들어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제 지인과 식사를 하던 중, 문득 지인이 제게 묻더군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그저 하던 일을 반복하는 단순무식한 일(?)인데, 그래서 배울 것도 없고 보람도 못 느끼지 않냐고 말입니다.
하하. 뭐 지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지라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애초에 제 일을 통해 애초에 무언가를 배우려고, 또 보람도 느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저의 직업이 저의 생계를 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오히려 저는 지금의 일을 통해 최대한 나만의 독서시간을 확보하여, 저의 성장과 발전을 도울 수 있는 책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직업을 통해 가치를 만나고 보람을 느끼면 좋겠지만 저 같이 회사 밖에서도 가치를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직장에서든, 혹은 밖에서든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집중하게 되면, 사실 직장생활이 보람이 있든 없든 그렇게 직장생활이 힘들게만 느껴지진 않더군요.
그러니 저는 여러분만의 멋진 가치가 늘 여러분 인생 가운데 함께하길 응원하겠습니다!
[4]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을 쓴 잭 캔필드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 저편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제대, 졸업, 취직, 이직, 결혼, 출산, 퇴직 등등의 신세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은 죽을 때까지 계속 신세계로 들어가는 긴 여정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두려움을 필히 동반합니다. 어떨 때는 나를 단번에 토막내버릴 것 같은 두려움입니다.
삶이 두려우면 멈춰버립니다. 도망가고 싶고, 그만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에서 계속 연주를 하면 그 다음으로 갈 수 있어요.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에서 공포스러운 도입부를 지나면 곧 힘차고 용맹한 개선곡과 같은 부분이 나옵니다.
두려움을 넘어선 세계가 분명 있습니다. 삶은 계속 신세계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그 연주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의 두려움과 사랑은 무엇인가요? 구체적으로 나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실패? 가족인정? 가난?
내가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번 써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두려움이 가실거예요
한 마사지치료사가 공황장애를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공황장애가 오면 블랙아웃이 되기 전 단계에 온몸이 떨린다고 합니다. 불안해서 손톱을 뜯거나 다리를 막 떨어요. 심하면 발작 증상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안 떨려고 하면 되레 증상이 심해집니다. 그럴 때는 다른 형태의 동일한 진동을 자기 안에서 일으키면 증상이 나아진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 힘들어 준공황상태에 빠지면 그 사람은 자꾸 고민하고 계속 해결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뇌는 필요 이상을 생각하면 피곤해집니다.
그러니 삶이 힘들 때는 필요 이상의 생각을 하는 대신 몸을 움직여줘야 합니다. 진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물리적인 진동도 있지만 웃는 것도 진동입니다.
공감, 맞장구 치는 것도 진동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준공황상태에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각이 아닙니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책을 읽든지,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든지 그렇게 몸과 마음에 진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주위 직장인들에게 늘 듣는 이야기는, 매주 찾아오는 고질적인 월요병 때문에 일요일 밤부터 늘 고통스럽기만 하다고 하네요.
저도 공감되는 내용이더군요. 저도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매주 월요병을 수 없이 만나왔지만, 늘 익숙치가 않고 참 고통스럽기까지도 합니다. 하하.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월요병이란 게 단순히 월요일이 싫어서 겪는 병이 아니라, 사실상 일어나지 않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병이라는 거를요.
막상 새롭게 주어진 한 주가 실상은 내게 멋진 일로만 가득할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두려운 마음에 괜시리 사람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겁니다. 불안해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월요병을 극복하는 방법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을 멈추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물론 현실의 상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기대하겠다고 하면 기대되는 것이니까요.
직장은 여러분의 내일도 늘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길 응원하겠습니다!
[5]
우리가 먹는 콩나물에도 선입견이 작용합니다.
콩나물 공장은 어둡게 하는 이유가 햇빛을 보면 콩나물 머리가 녹색으로 변하기 때문. 그러면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팔 수 없습니다. 콩나물은 노랑색이어야.
그런데 사실 노란색 콩나물은 녹색 콩나물보다 영양가가 훨씬 떨어진다고 합니다. 식물은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야 영양분이 높아지거든요.
콩나물 사장님은 ‘용기가 없어서’ 팔 수 없다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햇빛을 향해서 창만 열면 되는데, 선입견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영양가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슨 선입견 때문에 삶의 어마어마한 세계에 들어가지 않는 걸까요?
그게 결혼이든, 연애든, 사랑이든, 비즈니스든, 인생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세계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나의 세계에만 머무르려고 하죠. 아니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서도 본래 가진 선입견대로 살고요.
삶에는 녹색 콩나물이 도처에 있습니다. 잠시 선입견을 내려놔보세요. 그 안에 두려움도 있겠지만 어마어마한 경험과 기회 또한 존재할 것입니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많은 녹색 콩나물을 인생에서 꼭 재배해 드셔보시길 바랍니다.
짐이라는 말은 근심이나 염려라는 단어와 비슷합니다. 라틴어 어원은 ‘오지 않을 수 있는 미래나 지나가 버린 과거에 자기 마음이나 생각을 가져다 대다’라는 뜻
그러니 몸은 여기 있는데 정신은 딴 데 가 있는 상태. 그럼 힘이 분산됩니다. 지지 말아야 할 짐이란 이런 것입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근심과 염려를 버리세요. 지금 내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집중하고 어우러지라는 말.
밥 먹을 때는 밥 먹고, 일할 때는 일을 하고, 잠을 잘 때는 잠을 자고,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의 삶을 빼앗기게 됩니다.
지금 여기를 사는 방법은 길을 걸을 땐 그냥 길을 걸으세요. 근심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십시오.
단 하나 명심할 것은 당신 자신은 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말입니다.
김창옥 강사님의 콩나물을 비유로 든, 삶에 대한 깊은 조언이네요.
한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ㅎㅎ
[6]
침은 나를 신뢰하고 자기 발로 맞으러 온 사람에게만 놔야 한다는 사실.
아무리 내가 혈을 잘 찾고 필요한 부분에 정확하게 놓는다하더라도 나한테 침을 맞으러 온 게 아닌데 침을 놓으면, 그 사람 입장에서 바늘로 찌르는 것과 같은 공격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때 침을 놔달라고 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 침을 필요하다 싶으면 그냥 놔버렸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저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 동의없이 침을 찔러버렸습니다.
“내가 틀렸니? 내 침이? 난 정확하게 알아, 어느 지점인지.”
그래서 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저를 무서워, 어려워합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이런 말이 나오죠. 기원전 18세기에 쓰인 함무라비 법전에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나와있어요.
그러니 문제는 ‘요즘 ’애들‘한테 있는 게 아니지요. 이건 시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맞는 말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정서로부터 동의받지 않았는데 충고부터 하는 것이지요.
우리 삶에 실망스런 일이 자꾸 벌어지면 삶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기대와 희망없이 살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게 됩니다.
퇴보한 사람들 옆에는 상쾌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내공이 없어도 젊은 만으로 매력이 있지만, 어느 날 그 기운이 꺾이는 나이가 반드시 옵니다.
젊은 소망과 기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도 그것을 놓지 마세요.
삶이 계속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 각자 내 삶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잖아요.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아무 주문을 하지 않았을 때 음식이 올 확률보다는 높다는 것.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 원하거나 바라거나 소망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원하는 삶이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고기가 한 번에 구워질 수 없습니다. 인생을 한 번에 구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타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어차피 삶은 서서이 익어갈 테니까요. 여러분은 이때까지 삶을 뒤집고 잘 구워서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매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리스트로 정리해 놓고, 그렇게 하나하나 읽어 나가며 리스트에서 제거합니다.
이렇게 나름 목표를 정해 놓고 책을 읽고 있지만, 글쎄요. 직장생활이 바빠지기라도 하면 책을 읽을 기운도 없고, 그렇게 막상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이럴 때면 현타가 빡세게 옵니다 ㅎㅎ 에고...
그러나 그럼에도 제 자신을 한번 믿어보는 겁니다! 왜 맛있게 고기 한 점 먹기 위해서도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하물며 삶의 맛을 맛있게 내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요? ㅎㅎ
그러니 삶의 맛을 맛있게 맛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힘을 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