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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Dec 13. 2023

목적지를 모르는 가운데 믿음은 잃지 않도록 하는 말씀

<완전한 공시생> 제4부 일기장(2016) - 02 공시생 가채점


제4부 일기장(2016) - 02 공시생 가채점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였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히브리서 11:8, 킹제임스 흠정역)



드디어 오늘 공무원 시험이 끝났다. 시험장을 나오며 바로 집에 가서 쉴까 했지만, 아무래도 매도 일찍 맞는 게(?) 나을 거 같아 나는 가채점을 먼저 하려고 집 근처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실로 이동했다(괜히 집에서 채점하면 가족들 눈도 있고 부담스럽다). 도서관 공용 컴퓨터로 공무원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벌써 가답안이 올라와있었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때 나는 시험 난도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본 시험에서 혹시나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됐다. 그렇게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가채점을 시작했는데, 어라? 무언가 이상했다. 당연히 정답이라 적었던 답안들이 하나둘 틀리기 시작했다.


모든 과목을 채점 후 최종 점수를 계산해보니 기대했던 거와 다르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아니, 시험문제가 어렵게 나왔던 것일까? 다 같이 틀린 거라면 괜찮겠지만 나만 틀린 거라면 이거 좋지 않은 상황인데…….


마침 공무원 학원 사이트에서 자신의 예상점수를 입력해서 어느 정도 합격여부를 예측해주는 서비스가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 이용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내 가채점한 점수를 한번 입력해봤는데, 합격 커트라인에 내 점수가 조금 미치지 못한다는 걸 확인했다.


정말이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지난 두 번의 시험에서 내 점수는 합격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시험은 지난 시험들에 비해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이라니? 어찌할 줄 모르겠고, 등에 식은땀이 나고 머리는 복잡해졌다. 지금도 부모님으로부터 시험은 잘 봤는지, 언제 집에 올 건지 계속 문자가 오는데 뭐라 답변 드려야할지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도서관을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아, 설마 이번에도 낙방하는 건가?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는 왜 되지도 않을 공무원이 되겠다고 이리 고생만하며 괴롭게만 지내는 건지……. 그래, 내 자신에게 한번 질문을 해보자. 이 악물고 홀로 외롭고 쓸쓸히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2년 넘게 버틸 정도로 굳이 내가 공무원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단순히 아버지의 강요로 공무원이 되려고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년까지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이란 이유때문이서일까? 워라밸(work-life-balance)이니, 공무원 연금이니 뭐 이런 이유들로 공무원이 그리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도대체 왜 나는 공무원이 되고만 싶었던 걸까? 황당하긴 하지만 내가 지난 2년이란 시간이 넘도록 왜 공무원 시험에 그렇게 도전했는지 내 자신도 모르겠다.


물론 신앙적인 이유는 있었다. 예전에도 일기장에 쓴 적이 있지만 나는 꼭 공무원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싶다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공무원이 되는 거랑 하나님의 영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애초에 될 수도 없는 공무원인데 도대체 어떻게 공무원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인가?


목적지 없이 그저 무작정 걷고만 있는 지금 내 자신이 마치 길을 잃은, 스스로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한 시간을 조금 넘게 걸었을까? 전화기가 울려 누군가 했더니 친구B의 전화였다. 얼마 전 지방에 있는 모 공기업에 최종합격하여 이제 내려갈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바쁜 와중에도 내 시험결과가 궁금했는지 전화를 준 거 같다.


“여보세요? 들림아, 오늘 시험 보는 날이었지? 그래, 시험은 잘 봤어?”


“어? 그,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오질 않아서그게…….”


“뭐? 점수가 많이 안 좋게 나온 거야??”


나는 친구B에게 지금껏 내가 굳이 공무원이 되려고 왜 이리 오랜시간을 괴롭게만 지냈는지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고,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친구B는 내게 히브리서 11장 8절 말씀을 읽어주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다며, 지금 상황이 막막해보여도 분명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거라며 위로해주었다.


“오늘날에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이유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몰랐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들림아, 너도 지금 상황이 마치 길을 잃은 것 같고 답답하겠지만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겠다는 믿음으로 굳건히 나아가는 거야. 알았지?”


친구B의 조언이 위로가 좀 되었던지, 통화 후 나는 용기를 내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집에 도착한 나는 시험은 어떻게 보았냐는 부모님의 질문에는 대충 얼버무리고 내 방에 들어와 아까 친구B가 이야기해준 히브리서 11장 8절을 성경에서 찾아 일기장에 필사를 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였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히브리서 11:8, 킹제임스 흠정역)



친구B가 알려준 대로 아브라함은 정말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아갔다. 사실 친구B와 통화하기 전만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미래를 알려주셔서, 그렇게 자신의 앞날을 훤히 다 알게 된 아브라함이 걱정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앞날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나님만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렇기에 훗날 그가 오늘날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게 되었던 거고.


나도 이제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2년이 조금 넘는 수험생활은 그저 허무하게 지나갔고, 오늘 치른 시험에서의 점수로는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상황 가운데 결국 나는 히브리서 11장 8절 말씀을 붙들 수밖에 없겠다. 앞으로 한 달 뒤에 1차 필기합격자 발표가 있을 예정인데, 지금의 불확실하고 두려운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


나의 시험점수를 보면 화가 나고 눈물도 나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이겨내겠다. 마치 자신의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순종하며 나아간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다음화에 계속 됩니다.


<책으로 버티는 직장생활> 책장인 김세평과 <연애는 전도다> 김들림의 콜라보 프로젝트 <완전한 공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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