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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Dec 28. 2022

책으로 버티는 직장생활, 책장인 #26 고약하다 직장인

[직장인 책추천]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연


나는 늘 회사에서 내가 나여서 혼이 났다. ‘너는 왜 열심히 하지 않아?’ 첫 회사에서 내가 정말 잘못해서 혼난 줄 알았는데 세 번째 회사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듣는 걸 보니 그냥 이게 나인 것이었다.


나는 이제 제대로 대답할 수 있다. ‘내가 내 일만 똑바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뭐 덜한 거 있어? 더 시키려면 월급을 더 주세요.


물론 입 밖으로 내면 미움 살 일만 커지니까 굳이 말로 꺼낼 필요는 없고 속으로만 대답해도 충분하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착해질 필요 없다. 차라리 이런 대답을 하는 이상한 당신을 받아들여라. 그 고약함이 창작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근본이 된다.


이연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응? 내가 이상한 건가? 막 퇴근하려는 나를 팀원들이 붙잡는다. 왜 날 붙잡는 건데? 아니, 6시가 넘었다고요. 오늘 할 일도 다 했다고요.


팀장님께서 오늘 우리 팀 모두는 야근을 좀 하자고 하신다. 다른 팀에 비해 우리 팀이 야근하지 않아 회사에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였다.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야근하지 않고 그냥 퇴근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집에 가서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 생각했다. 일이 없는데 야근을 하라니요?


물론 팀장님의 입장도 이해된다. 아무래도 야근 열심히 하는 팀을 회사에서는 좋아할 거다. 팀장님 위치에선 그런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으실 거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는 회사 혹은 팀장님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 뭐 내게 부응을 원하면 부응수당을 주시던가?


그렇게 나는 퇴근했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팀장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역시나, 예상은 했다. 팀장님께서는 그간 나의 근무태도에 대해 지적하셨다.


“세평아, 넌 왜 회사생활을 열심히 안하냐?”


그냥 내가 어제 야근하지 않고 집에 간 걸 지적하시면 되는 걸 갖고 온갖 이유들을 여기저기서 끌어다가 이야기하신다. 그래서 결국 결론은 ‘너 왜 회사생활 열심히 하지 않아?’였다. 나는 그냥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는데 나만 외딴 섬에 있는 기분이었다.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잔업이 없는데 왜 남의 팀 눈치를 보면서 야근을 해야 하지?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났다. 친구와 밥을 먹다 문득 그 사건이 생각나 이야기해주었다. 내 얘기를 듣던 친구는 네가 좋아할 것 같다며 이연 작가가 쓴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추천했다(사주진 않았다).


그렇게 추천 받은 책을 구해 어느 날 집에서 읽다가 피식 웃었다. 책 저자의 직장생활 중 겪었던 일들이 내 직장생활의 고충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외딴섬이라 생각했는데 나와 같은 또 다른 외딴 섬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무언가 반가웠다.



“나는 늘 회사에서 내가 나여서 혼이 났다. ‘너는 왜 열심히 하지 않아?”


“세 번째 회사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듣는 걸보니 그냥 이게 나인 것이었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착해질 필요 없다.”


“차라리 이상한 당신을 받아들여라.”



차라리 이상한 나를 받아들이란 책 문구에 유독 위로받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직장에서 내가 이상하단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나는 그런 소리를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나름 신경 쓰고 있었다. 사실 주위로부터 들려오던 그런 소리는 내게 조금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보는 나의 이상한 행동들은 이러했다. 눈치 안 보고 퇴근하기, 점심시간에 혼자 책읽기, 주어진 휴가는 다 쓰기, 직원들과 웬만하면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안 하기, 퇴근 후 직원들하고 방탈출하러가기(?) 등등.


이러한 나의 행동들은 내 기준에선 지극히 정상이었다. 내 통장에 찍힌 월급 숫자를 보면 더더욱 내 기준이 정상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나는 이상한 직원으로 명명되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다보니 혹시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닐까, 그래서 주위에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물론 이상하다는 말과 나쁘다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그렇지만 계속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책 저자의 말처럼 그냥 이상한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이상한 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이런 나로 살기로 했다. 물론 가끔 팀장님에게 따로 불려가 잔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팀장님의 잔소리가 있어야 내가 나답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단 증거는 아닐까?


내 삶을 살아내기도 벅찬데 남들 기대까지 눈치보고 살다간 과부하가 걸린다. 그냥 누가 내가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면 누가 내 인생 멋있다고 칭찬하는 거로 생각하자.


그래서 작가는 책에서 이런 말도 덧붙이더라.



“당신의 그 고약함이 창작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근본이 된다.”



난 나의 고약함으로 나름 내 회사생활을 나답게 창작 중에 있다.

그래서 난 궁금하다. 당신의 고약함은 무엇인가?


당신의 고약함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당신의 그 고약함이 당신의 직장생활을 멋지게 창작해줄 거라 믿는다.


그러니 누가 당신보고 고약하다고 뭐라 해도 겁내지 마시라!

나는 고약한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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