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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Dec 28. 2022

책으로 버티는 직장생활, 책장인 #22 열정없는 직장인

[직장인 책추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내 생각에 열정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열정 같은 거 없어도 우리는 일만 잘한다.


우리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열정까지 요구하는 건 좀 너무하다 싶다. 안 생기는 열정을 억지로 만드는 건 스트레스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강요하지 말고, 뺏어 가지 좀 마라. 좀!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밤새 몸이 너무 아파 결국 응급실에 왔다. 응급실에서 이것저것 검사해보니 급성 간염이라 한다.


엥? 제가 간염이라고? 나는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 않기에 내가 간염에 걸렸다는 게 이상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스트레스성 간염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2주 정도 병원에 입원했고, 정말 죽다 살아났다.


스트레스야 뭐 그냥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 몇 개만 보면 자연스레 풀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가 주는 스트레스는 별 거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별 거가 사람 잡을 뻔했다! 회사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내 간을 몹시 괴롭히고 있던 거였다. 내가 내 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내 간이 이렇게 고뇌하고 있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우리 과장님이 생각났다. 어느 날 과장님은 나를 부르시더니 지금 네 직급에는 회사에 누구보다 열정을 보일 시기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내게 프로젝트 하나를 맡기셨다. 과장님은 내게 이 프로젝트에 네가 열정을 다해 한번 성과를 내보라 하셨다.


'열정? 도대체 무슨 열정을 말씀하시는 거지? 나는 회사에 딱히 보일 열정이 전혀 없는데...'


아무튼 나는 과장님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얼떨결에 그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있지도 않은 열정을 보이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스트레스성 간염으로 병원신세를 진 거다.


4인 병실에 누워 그저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제외한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은 대부분 임종을 앞둔 어르신들이었다. 어르신들은 그 어떤 미동도 없이 그저 산소 마스크만 끼고 누워만 계셨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서 미동도 없는 어르신들과 함께 누워 그저 천장만 바라봤다.


아놔, 50년 뒤에나 올 병실을... 그놈의 열정 때문에 지금 와버렸네?’


입원한지 열흘 정도 지나니 다행히 몸이 좀 괜찮아졌다. 이제는 돌아다닐 힘이 좀 생겨, 나는 뭐 할 거 없나 병원을 이곳저곳 돌아다녀보았다. 그렇게 어느 층을 돌아다니다 작은 도서관 하나를 발견했다.


무슨 병원에 책이 있냐며 신기해 한번 도서관을 훑어보는데, 유독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얼른 집어 들어 바로 그 자리에서 읽었다. 그 책은 바로 하완 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였다.



“열정 같은 거 없어도 우리는 일만 잘한다.”


“우리 대부분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열정까지 요구하는 건 좀 너무하다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과장님이 생각났다. 분명 과장님은 내게 내 직급은 회사에 열정을 보일 직급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과장님이야말로 회사에 열정을 보일 직급이 아닐까? 왜냐면 과장님이 나보다 회사로부터 월급을 훨씬 더 많이 받고 계시지 않으신가?


내가 회사로부터 내 직급대로 받은 이 적은 월급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가 내게 열정까지 요구하는 거 같지는 않다.


반면 과장님 직급만큼 받은 그 많은 월급을 보면, 내가 아니라 과장님 회사에 열정을 좀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아놔, 내 말이 틀린가? 회사에서는 원래 받은 만큼 일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아니, 과장님! 월급을 그렇게 많이 받아놓고 정작 저보고 열정을 보이라니요? 그럼 제게 열정수당이라도 좀 주시던가!



“안 생기는 열정을 억지로 만드는 건 스트레스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사실 나도 문제였다. 있지도 않은 열정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고 했으니... 그렇게 억지를 부려 결국 스트레스 받고 간염에 걸려 입원한 게 아닌가? 억지로 열정 부리다 하마터면 정말 열정적으로 훅 가버릴(?) 뻔했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나도 깊이 반성한다. 책 저자의 말대로 열정은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열정이 없다면 굳이 억지로 열정을 만들려 애쓰지 말자. 물론 회사에서 열정수당을 두둑히 지급할 의사가 있으면 한번 고려는 해보겠지만!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강요하지 좀 마라. 좀!”



책에서 만난 이 문구를 나는 내 가슴 깊이 새겼다. 죽다 살아난 나는 눈에 이제 뵈일 게 없었다. 회사만 돌아가기만 해봐라...


그렇게 나는 퇴원 후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오랜만에 돌아온 회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내 책상 위에는 지난 프로젝트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사무실나가 바로 인사담당 부서로 직행했다. 나는 인사 담당자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진짜 저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니 저 좀 살려주시죠?"


나는 인사 담당자에게 나를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지금 막 병실에서 살아 돌아왔기에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다(?)는 이상한 협박을 하며 나를 타 부서로 발령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서 열정다운 열정을 보였다. 그 열정은 나를 지키기 위한 열정이었다.


내 열정이 통했던지(?) 회사에서는 내 요구사항을 들어줬고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내 열정이 워낙 강력했던지, 나는 내 인사소식과 함께 내 이름이 회사 직원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아마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직원들은 추후 승진에 제약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뭐 승진 따위가 중요한가? 모처럼 내 안에 열정이 생겼는데!'


나를 지키기 위한 열정이 내 안에 꿈틀거린 건 처음이었다. 이제 앞으로 회사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열정을 어떻게 보여줄지 정말 내 스스로도 기대된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다른 근무지로 인사이동했다.


어라? 새로 발령받은 부서의 과장님도 첫 만남부터 내게 열정을 보이라고 하신다. 이분은 내게 심지어 초심까지 강요한다. 어랍쇼? 이번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새 과장님, 제게 열정수당과 초심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혹시 회사에서 당신에게 누군가 당신의 열정을 강요한다면 그 사람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해라.


“열정수당을 주세요. 아니 당장 내놓으세요. 그것도 두둑히.”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회사생활 중 한 번 정도는(?) 당신을 지키기 위한 열정을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나는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그런 당신의 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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