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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Jan 04. 2023

책으로 버티는 직장생활, 책장인 #31 배우려는 직장인

[직장인 책추천] <이어령, 80년 생각> 이어령, 김민희


지금 우리 교육은 하우 투언(earn)에 중점을 두고 있지.


L을 하나만 보태봐. ‘하우 투 런(learn)’이 되잖아.


‘하우 투 런(learn)’에 가치를 두면 사회 전체가 달라져요.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해봐요.


이어령, 김민희 <80년 생각>



“세평아, 우리 회사 가스배관 공사를 네가 맡아줘야겠다.”


“네? 저보고 가스배관 공사를 진행하라고요?”


어느 날 팀장님이 대뜸 나를 부르시더니 나보고 우리회사 가스배관 공사 총괄을 맡기셨다. 네? 저 보고 가스배관 공사를 진행하라고요? 나는 팀장님의 지시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왜냐면 나는 평생 문과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 가스배관 공사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은 전공자를 시켜야지, 이걸 왜 나를 시켜... 그리고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기존 업무로도 충분히 바빠 죽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소한 가스공사 일까지 나한테 떠밀어주니 정말 화가 났다. 그러나 팀장님의 명령인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나는 가스배관 공사 총괄이 되었고, 공사를 맡길 업체를 수소문하다 어느 업체의 실장님과 연락이 닿아 함께 가스배관 공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공사를 진행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실장님으로부터 듣는 가스배관 공사 관련 용어들을 무슨 말인지 정말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한국말인데 외국어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내가 얼마나 못 알아들었는지 그때 실장님과 나누었던 부끄러운 대화를 공개한다.


“세평 씨, 그럼 제가 내일 오후에 시방서 하나 가져다 드릴 테니까 오후에는 자리 비우지 마세요.”


“네? 시방? 실장님, 방금 저한테 욕하셨어요? 아니, 지금 저보고 시방이라고 하셨어요?”


“예? 욕이라뇨? 아아, 시방이 아니라 시방서요. 아니, 시방서도 몰라요? 이런 시방.”


시방서를 욕으로 알아들을 정도로 나는 가스배관 공사에 정말 무지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아무튼 그렇게 나는 공사를 진행하며 탈탈 털리며 일하던 중 마침 주문해 놓은 신간도서 <이어령, 80년 생각>이 사무실로 도착했다. 음... 마침 야근도 해야겠고, 야근 전 잠시 휴식도 취할 겸 나는 책을 폈다.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던 중 눈에 들어오는 문구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 교육은 하우 투언(earn)에 중점을 두고 있지.”


“L을 하나만 보태봐. ‘하우 투 런(Learn)’이 되잖아.”


“‘하우 투 런(learn)'에 가치를 두면 사회 전체가 달라져요."



이어령 교수는 배우는 것보다 얻으려는 것에 중점을 두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도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서 초중고에 대학까지 나왔으니 우리나라 교육의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음... 내 기억에도 학교 다니면서 무언가를 얻으라고만 들었지,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라는 말은 들은 적은 없던 거 같다. 분명 나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라, 자격증을 얻어라, 직장을 얻어라 등등 순 얻으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와우, 진짜 그러네? 어릴때 부터 얻으라는 이야기만 듣고 자랐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무얼 배우려고 하기는커녕 무얼 얻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정말 나는 회사에서 무얼 배워 보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무려 회사를 다닌지 4년이 넘어가는데도! 후...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이어령 교수의 조언이 내 회사생활에 어떤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참에 가스배관 공사를 맡은 김에 제대로 이 일을 배워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사실 배움 앞에서는 문과생이라는 것도 그저 핑계다. 배움 앞에서 무슨 출신을 논하는가?


그리고 피해갈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배움을 한번 즐겨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약 5개월의 가스배관 공사를 진행했고, 다행히 업체 실장님이 일을 잘하시는 분이어서 공사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가스배관 공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또 팀장님이 나를 부르신다. 이번에는 나보고 회사가 코로나19에 대비할 수 있도록 회사 전체를 방역할 방역업체를 찾아오라한다. 아니, 집에 굴러다니는 페브리즈밖에 모르는데 저 보고 방역업체를 찾으라니요?


아놔, 직원 중 관련 전공자가 이렇게나 없나? 이번에도 문돌이로서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뭐 어쩌겠나? 그래, 회사에서 하나라도 배우기로 했으니 이참에 나는 소독약이나 배워봐야겠다. 이제는 포스트코로나시대라고 하니 소독약 종류 정도는 배워두면 좋겠지 뭐.


혹시 당신도 나처럼 회사에서 자신과 맞지 않은 업무를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당신도 이번 기회를 통해 '하우 투언(earn)'에서 '하우 투 런(learn)'의 자세를 한번 생각해보길 권해본다.


나도 솔직히 억울했다. 평생 문돌이가 느닷없이 가스배관 공사라니! 그러나 막상 배워보려고 하니 나름 좋은 배움이 되었다. 나는 직장생활 중 당신에게도 좋은 배움이 있길 응원하겠다.


나는 당신 인상 가운데 늘 소중한 배움이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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