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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Jan 27. 2023

책으로 버티는 직장생활, 책장인 #47 내가선택 직장인

[직장인 책추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는 한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선택을 어떻게 하는가는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그런데 주위엔 선택을 유난히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완벽한 답을 얻으려는 강박일 수도 있으나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 자기 신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결과까지 책임질 때 얻어진다.


삶에 완벽한 답안지는 없으나 어떤 답을 내리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당신의 모든 선택은 정당하다.


김수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야, 띠껍냐? 띠껍냐고!”


중학교 2학년 당시 어느 점심시간, 일명 일진이라 불리는 녀석들이 나를 둘러쌌다. 이미 난 한 녀석에게 수없이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 녀석들 중 유독 나를 미워하는 한 녀석이 나에게 오더니 발길질을 하며 이야기했다. 내가 띠껍냐고.


20년이 넘게 지난 일이라 솔직히 이젠 기억도 희미해진 내가 겪었던 학교폭력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문득 생각나기도 하고,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다. 아니, 도대체 띠껍다는 뜻이 뭐기에 녀석들은 내가 띠껍다며 내게 그런 폭력을 휘둘렀을까?


아무튼 그때 녀석들은 내게 협박을 했다. 너를 폭행한 일을 누구에게라도 발설하면 그날 나를 죽일 거라는 그런 협박을. 그리고 녀석들은 흩어졌다. 그렇게 녀석들에게 두들겨 맞고 덩그러니 혼자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던 나는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알려야 하나?’


‘누구한테 말하기라도 하면 분명 나를 죽인다고 했는데...’


녀석들의 2차 가해가 두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로 학생부로 갔다. 그리고 내가 일진에게 폭력을 당했음을 학생부 선생님에게 신고했다. 학생부에 신고를 했으니 이제 나는 녀석들에게 죽을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 선택을 했다. 왜냐면 녀석들에게 죽더라도 당당히 내가 내린 선택은 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학생부에 신고를 했고 녀석들은 학생부에 불려갔다. 그러나 딱히 바뀐 건 없었다. 그냥 학교에서는 조용히 넘어갔던 거 같다. 역시나 일진 녀석들은 내가 학생부에 신고했다며 나를 죽이겠다고 또 나를 둘러쌌다. 그런데 실제로 죽이진 않았고, 그저 다음부터는 띠껍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만 하고 흩어졌다. 나는 흩어지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음... 도대체 띠껍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김수현 작가 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선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는 한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선택을 어떻게 하는가는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그런데 주위엔 선택을 유난히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완벽한 답을 얻으려는 강박일 수도 있으나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 자가 신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작년에 나는 회사에서 정말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직원 3명이 붙어서 처리해야 할 일을 혼자 도맡아서 하게 된 것이다. 그간 5년이 넘도록 이 회사에서 일했지만, 이런 불합리한 일을 겪었던 건 정말 처음이었다. 나는 온 회사를 돌아다니며 직접 상사분들을 만나 제발 우리 팀을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다들 나를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말뿐이었다.


“미안해요, 세평 씨. 지금 우리 팀도 도와줄 여력이 없어요.”


“세평 씨, 나도 옛날에 그런 적 있어. 일단 버텨봐. 응?”


나는 그렇게 주위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3개월을 버티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 병원에 가니 의사선생님이 내 상태를 보고는 당장 회사를 쉴 수 있으면 쉬라고 하셨다. 의사선생님은 내게 내가 앓고 있는 병명으로 진단서를 끊어줬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진단서를 들고 회사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직원을 찾아갔다. 그 직원은 내 손에 진단서가 들린 것을 보고는 내가 질병으로 회사를 휴직하러 온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인사담당 직원은 재빨리 내가 회사를 휴직하지 않도록 나를 회유하려 했다.


“세평 씨가 지금 많이 힘든 거 알아요. 그런데 세평 씨가 지금 회사를 쉬게 되면 당장 세평 씨의 빈자리를 채울 직원이 없어요.”


“세평 씨를 위해 제가 어디서 직원을 구해볼게요. 그러니 한두 달만 더 버텨주는 거는 어때요?”


“이런 이야기까지 꺼내고 싶진 않지만... 지금 회사를 쉬면 나중에 승진할 때 불리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는 세평 씨도 잘 아시죠?”


그래, 나에게는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회사에서 좀 더 버텨볼 것이냐, 아니면 팀에 피해를 주든, 승진에 불이익을 받든, 뭐든 감수하고 회사를 쉴 것이냐.


나는 혼란스러웠다. 비록 몸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지금 내가 팀에서 빠지게 되면 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승진순위는 밀려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같이 고생하고 있는 팀장님과 팀원들이 그저 눈에 밟혔다.


그러나 한두 달을 버틴다 하더라도 직원이 충원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인사담당 직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신뢰할 순 없었다. 그리고 이러다 몸이 더 악화될까봐 두려움도 있었다.


도대체 모르겠다. 정말 어떤 선택이 완벽한 선택일까?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결과까지 책임질 때 얻어진다.”



그래, 삶에 완벽한 답안지는 없다. 나는 고민 끝에 결국 회사를 쉬기로 했다. 회사를 쉼으로 이제 나는 회사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팀원들 버리고 도망간 직원으로 낙인이 찍힐지 모르겠다. 이번 선택으로 이제 후배들이 나보다 먼저 승진하는 일도 벌어질 거다.


그러나 내가 내린 선택의 어떤 결과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거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학생부에 녀석들을 신고했다. 당시 나는 녀석들에게 죽더라도 나만의 선택은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쉬면 불이익이 있을 거란 협박 아닌 협박이 있었지만 나는 회사를 쉬기로 했다. 물론 몸이 아파 회사를 쉬어야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지만, 동시에 나는 나만의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회사에서 끌려만 다녔던 나였기에, 이번만큼은 제대로 나만의 선택을 하고 싶었다.


나의 선택에 따라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상관없다. 설사 회사에서 잘리게 되더라도 나는 그 결과를 받아들 거다. 왜냐? 이건 내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나만의 선택을 내릴 것이고, 내 선택을 언제나 스스로 지지하고 응원하고, 그리고 사랑할 것이다.


혹시 당신도 지금 직장생활 가운데 선택의 고민에 놓여있는가? 그렇다면 결과는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한다. 오로지 당신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길 바라겠다.



“삶에 완벽한 답안지는 없으나 어떤 답을 내리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당신의 모든 선택은 정당하다.”



나는 직장생활 가운데 당신만의 모든 선택을 응원하겠다!

당신의 선택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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