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장소, 불편함을 마주하다.
호주는 정말 광활했다.
빨간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울창한 숲을 헤치며 세 시간쯤 달렸을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한 밤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예상 밖이었다.
숨 막힐 듯 가파른 절벽 위에, 세련된 현대식 주택 세 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
호스트 부부는 우리를 반기며 지침과 안내 사항을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들 부부의 외모에 머물렀다.
같은 여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던 스페인 아내 ‘새라’.
그리고 얼굴 절반을 덮을 만큼 거친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 통통한 배가 인상적인 남편 ‘존’.
그를 보며 문득 해리포터 속 ‘해그리드’가 떠올랐다.
존은 호주 원주민(Aboriginal Australians)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성하게 여기는 바위를 소개하며, 그곳이 ‘드리밍(Dreamtime)’의 공간이라 설명했다.
바위, 나무, 강, 동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토템 문화와, 세상에 대한 그들만의 세계관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정신을 다잡고 안내 사항에 집중하려 애썼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하루 4~5시간, 절벽 위에서 고해상도 광학 장비로 고래의 행동을 관측하는 봉사를 했고,
목요일과 금요일엔 새라의 세 살배기 아들 ‘리키’를 돌보는 게 내 역할이었다.
중앙에 자리한 주황색 집은 공용 공간으로 쓰였다.
통유리창 너머로 부엌과 식탁이 보였고,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나눴다.
새라는 요리를 맡았고, 봉사자들은 청소와 설거지를 돌아가며 맡았다.
그런데, 숙소는 어디일까?
그 순간, 존이 텐트를 펼치기 시작했다.
‘설마… 텐트에서 자는 건가?’
당황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존은 웃으며 말했다.
> “You can sleep in this tent.”
존은 숲속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고,
분홍색 해먹이 달린 공간 앞에서 다시 말했다.
자연과 함께 머무는 것도 하나의 낭만이라며.
나는 속으로 나 자신을 달랬다.
‘그래, 이런 경험 또 어디서 해보겠어.’
하지만 막상 텐트 안에 혼자 누워 있으니 낯선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막내로 자랐고, 독립적으로 살아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되었고,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족이 그리웠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한밤중.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났다.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
거센 빗소리에 텐트가 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얼굴에 무언가 떨어졌고, 그것은 빗물이었다.
텐트에 작은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공포와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쩌지? 이 밤중에 공용 집까지 가긴 너무 무서울 텐데…’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그래, 나에겐 우산이 있지!’
나는 텐트 안에서 우산을 펼쳤다.
머리 위로 우산을 들고, 그렇게 밤을 버텼다.
새벽이 되어 빗소리가 잦아들자마자, 나는 곧장 공용 집으로 향했다.
내 얘기를 들은 새라는 따뜻한 눈빛으로 공감해주었고,
두 번째 집 옆에 있는 카라반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첫 번째 난관은 그렇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남아 있었다.
너무, 씻고 싶었다.
마당에 있는 야외 샤워실로 향했다.
하지만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찬물을 유독 싫어하던 나는 이를 악물고 찬물에 몸을 맡겼다.
그러던 중, 눈을 의심할 장면을 마주했다.
변기 속에 커다란 개구리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중황색과 검은 줄무늬가 섞인 알록달록한 몸통.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나는 그대로 변기 뚜껑을 덮어버렸다.
샤워를 마치고 돌아오니, 새로운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유치원 교사 세레나, 대학생 카일,
그리고 독일에서 온 은행원 데니안.
사람이 그리웠던 나는 활짝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세레나는 프랑스 특유의 억양이 묻어나는 영어를 썼다.
특히 h 발음을 생략하는 습관이 있어, “hello” 대신 “ello”라고 말하며 다가왔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 문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잡채와 김밥을 만들어 준 날도 있었다.
그 따뜻한 마음 덕분일까.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끼니 해결이 아니었다.
새라는 요리를 ‘하는 일’이 아니라 ‘창조하는 일’로 여겼다.
공용 주방엔 요리책이 가득했고, 그녀는 직접 빵을 굽기도 했다.
그녀의 손길로 완성된 음식들을 함께 나누며,
우리는 13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고래 관찰을 위해 머무는 영국인 과학자 폴 할아버지의 유려한 영어 발음은
들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냈다.
외로움도, 개구리도, 찬물도 이겨낸 나는
드디어 고대하던 고래 관찰 장소로 향하기 위해 다시 오프로드 차량에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호주 바다를 품은 절벽 위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진짜 모험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계속 됩니다...)
#호주워킹홀리데이
#워홀에세이
#자연과함께
#감정에세이
#성장기록
#낯선곳에서
#자기탐색
#브런치에세이
#일상기록
#감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