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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노트11화] 가면을 쓴 어른일까?

자아(self)

by 민이


“어? 저기 보이는 저 사람, 우리 회사 차장님이셔.”

서준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멋진 고급차에서 내리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회색 정장에 남색 체크무늬 넥타이, 손에는 검은 서류 가방.

그는 바쁜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저 차장님,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야.

불같이 화낼 땐 사무실 공기가 꽁꽁 얼어붙어.

다들 개한테 안 물리려는 사람처럼 얼마나 조심하는데.”


서준이가 말을 이어갔다.

“근데 저번에 차장님 댁에 초대받아 간 적 있거든?

부인 앞에서는 얼마나 다정하신지 깜짝 놀랐다니까.

사람이 그렇게 다를 수도 있나 싶었어.”


그날 이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양면적인 모습을 가질까?

사회에서는 가면을 쓰고, 가족 앞에서는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걸까?


요즘 내 안에서도 이런 혼란이 있었다.

‘어떤 내가 진짜 나일까?’

외적 성격과 내적 성격 사이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곤 했다.


브래드쇼(John Bradshaw)의 ‘내면아이’ 이론에 따르면,

내적 성격은 우리 안의 정서적 자아다.

감정, 사고, 욕구, 상처, 그리고 진짜 ‘나’가 사는 영역이다.


가족이나 연인, 가까운 친구 앞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애착이론(John Bowlby)이 말하듯,

친밀한 관계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기반이 된다.

그 안에서 ‘사랑받고 싶다’,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이 얼굴을 내민다.

투정이나 서운함, 기대 같은 감정들이 바로 내면아이의 언어다.


반면, 외적 성격은 사회가 요구하는 자아다.

논리와 규율, 성과 중심의 공적 얼굴.

융(Carl Jung)의 말처럼, ‘페르소나(persona)’ — 세상이 요구한 어른의 가면이다.


아버지는 가장으로, 어머니는 돌봄자로,

“괜찮다”, “참아야지”, “엄마니까 이 정도쯤은…”

이 말 속에는 감정을 삼킨 어른의 표정이 숨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 안에는 여전히 아이가 산다.

우리는 알고 있다.

어른은 성숙해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른은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다.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채로.


그런 사람을 보면 깨닫게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의 감정적 근원은 결국 ‘어린 나’라는 것을.

가면을 쓴 어른의 얼굴은 사회가 요구한 역할 속에서

감정을 숨기며 살아가는 한 형태일 뿐이다.


가족 안에서는 그 가면이 벗겨진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진짜 감정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성숙한 자아의 핵심은 무엇일까?

성숙은 내면아이를 숨기는 게 아니라, 품는 일이다.

“내가 질투가 났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누구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이번엔 이렇게 해보자.”

감정을 인정하고 스스로 돌볼 수 있는 힘,

그게 진짜 어른의 모습 아닐까.


심리학자 브렌 브라운(Brené Brown)은 말했다.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가 진짜 친밀함을 만든다.”


결국, 외적 성격은 세상이 요구한 얼굴이고,

내적 성격은 내면아이가 살아 있는 진짜 얼굴이다.


역할 속의 나와 감정 속의 나,

그 둘 다 진짜 나일 것이다.

공적 자아는 세상이 만든 나,

사적 자아는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관계속에 사랑은 —

그 둘이 화해하는 순간에 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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