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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금 Mar 27. 2023

캐나다에서 네일테크니션이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캐나다로 가서 살자고. 밤을 새우며 고민하던 그는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던 내게 글씨로 가득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캐나다 이민 로드맵 같은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영주권을 따고 나서 다시 찾아보니 거의 계획대로 진행되어서 약간 소름 돋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로드맵 가라사대 남편이 컬리지에서 공부를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나는 풀타임으로 일을 해야 한단다. 당시의 나는 내가 어떻게 외국에서 일을 하냐고 그냥 한번 던져보는 소리겠거니 헛웃음을 쳤지만 남편은 돌아오는 주말에 바로 영어시험을 봤고 차근차근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한 뒤 나보다 몇 달 먼저 나가버렸다. 현실로 다가온 캐나다살이였지만 아직 실감이 안 났던 나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캐나다로 입국해 비자심사관 앞에 서게 됐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했어?”

 “회사에 다녔습니다.”

 “여기서는 무슨 일 할 거야?”

 “…”

 그렇다. 캐나다 땅을 밟는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정말 외국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다. 사실 일부러 외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외국인들과 일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몇 달 만에 상봉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이거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학교 다니랴 일하랴 얼굴이 반쪽이 된 남편이었다. 혼자 있으니 당연히 먹는 것도 부실했을 터. 시차적응과 짐정리로 며칠을 보내고 슬슬 캐나다 구직사이트들을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직조건마다 붙어있는 영어가능이라는 문구가 안 그래도 위축된 자신감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인식당 구인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번엔 남편이 반대했다. 한인 비즈니스에서 일하게 되면 영어가 늘지도 않을 것이고 캐나다에 적응하는 것도 더뎌질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 돈이 안 급한가. 그렇게 마땅히 제대로 이력서를 내보지도 못하고 어느새 캐나다에 온 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남편이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지냈던 에어비앤비 주인 부부와 친해져서 자주 연락하고 지냈었는데 그 친구들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 부부는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우리 부부처럼 남편이 학교를 다니고 와이프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와이프가 본인이 일하고 있는 곳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는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다들 젊고 분위기도 괜찮아서 적응하기 쉬울 거라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오케이를 했고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오너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일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나는 전화통화를 하지도 면접을 보지도 않고 합격을 해버린 상황. 그 친구가 일하고 있던 곳이 바로 네일숍이었다. 한국에서 연간 회원권을 끊어서 다닐 정도로 네일관리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내가 네일테크니션으로 그것도 캐나다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첫 출근날.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집 앞으로 나가 네일숍 오너의 차를 기다렸다. 네일숍이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에 있어서 차가 없던 나를 오너가 출퇴근 시켜주기로 했다. 얼마를 기다리자 흰색 밴 한 대가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뒷좌석 문을 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녕하쎄요!”

 차 안은 문 앞에 내가 탈 자리 하나만 비워두고 만석이었는데 모두들 한국말로 인사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들은 모두 베트남 친구들. 오너 부부도 캐나다 시민권자였지만 베트남 출신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캐나다 네일숍 비즈니스는 대부분 베트남이나 중국출신의 이민자들이 꽉 잡고 있다.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나라 베트남. 그 덕분에 나는 친해질 노력도 필요 없이 얼떨떨하지만 동료들의 넘치는 호감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오너 부부가 준비한 떡볶이와 김밥을 간식으로 먹었으니 말 다한 거다. 일을 소개해준 친구를 비롯하여 동료들은 다들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너 부부와 친인척들이었다. 말 그대로 가족 같은 분위기. 걱정했던 것보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네일테크니션이 되었고 생각보다 오래, 4년의 시간 동안 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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