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칙연산을 뒤집고 그 원리대로 사는 삶
사칙연산의 정석은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 x ÷)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에서 사칙연산을 뒤집어 살아보기로 했다. 나누면 배가되고, 주면(빼면) 더해지는(÷ x - +) 삶으로 말이다. 내가 먼저 기꺼이 나누면 풍성하게 배가되고, 내가 가진 것을 필요해하는 이에게 내어주면 내 마음에 뿌듯함이 더해지는 것. 생각만으로는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공식인가. 하지만 현실은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나의 배려가 당연히 누려 마땅한 권리가 되었고, 진심을 담은 호의는 마음껏 이용해도 되는 자유이용권처럼 그들에게 득템의 기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내 주었더니 제 손에 들렸던 봇짐은 왜 안 건졌냐며 따져 묻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경에서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 뺨마저 내밀어 주라 하고, 사람에게 주되 보상은 하나님께 받으라 한다. 때로는 성경적 원리로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럼에도 속상함은 언제나 나의 몫으로 남았다. 좋은 마음으로 이해해 보려 노력해 보지만 결국 억울한 감정과 속상한 마음으로 무너지기 십상이고 사람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결국 관계를 끊어 내거나 달팽이가 제 집에 들어가 몸을 보호하듯 조용히 숨어버리기도 했다. 스스로 애써 괜찮다며 마음을 다스려 봤지만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듯 누구와도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게 됐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관계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일까, 좋은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대로 실천하며 살겠다는 다짐이 문제인 것일까. 가만히 마음 안에 들어가 진짜 마음을 들여다 보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뒤집어 놓은 사칙연산의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반쪽짜리 마음으로 행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나누고 내어주겠다는 마음에 아낌이 없어야 하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온전함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배제한 채 실천하니 불편한 마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내 것을 내어준다는 마음가짐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내가 내어주는 것, 나누어 주는 것은 원래 나의 것이 아니며 나에게 맡겨진 그것을 순리대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꿔보는 것. 내가 가지게 된 것을 내 안에 고이게 하고, 내가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닌 그저 통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축복의 통로라고 하는 말처럼 내가 누리는 축복은 응당 누군가에게 흘러가니 통로라 칭했을 터. 이런 원리를 알고 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뒤집어진 사칙연산의 핵심원리는 원래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불교에서 비우고 내려놓는 것과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내어주는 청지기의 삶을 사는 정신. 이 핵심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배려를 권리로 알든, 호의를 악용해 호구로 누리든 그것에 마음이 상할 일이 없다. 몰라서 실수하는 아이, 다 내 것이라며 욕심내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덤비는 이들을 바라볼 때 그저 안타깝고 때로는 귀엽기까지 한 괴상한 마음이 생기는 이유가 이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닐까.
살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가진 무엇을 빼앗길까 잃을까 전전긍긍하지 말 것. 그리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을 보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감정으로 살기보다 그저 축복해 줄 것. 그리고 내게 맡겨진 것들을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듯 아낌없이 나누는 청지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살아갈 것. 즉 뒤집어진 사칙연산의 핵심원리를 온전히 새기고 진짜 나눔을 실천하며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살면서 나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과 함께 작은 날갯짓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