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의 나, 슬픔의 첫 장
기억은 선택적이다. 슬픔의 기억은 언제나 강제로 다가오고, 그 순간이 나의 인생을 처음으로 열었다. 여섯 살 희애의 시선으로 본, 아빠 없는 세상의 첫 기억. 오픈식이 꽤나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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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시작이었을까.
기억의 첫 장은 여섯 살의 나, 문희애이다.
그때 나는 외삼촌과 함께 엄마 품에서 자랐다. 아빠라는 존재를 인지하기 전의 시간, 내 세상엔 엄마와 외삼촌만이 있었다. 너무 당연해서, 그 부재를 느끼지 못했다.
첫 부재를 느끼게 한 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아빠와 찍은 사진을 내게 자랑했다. 나는 그날 밤 집에 와서 외삼촌과 찍은 사진을 가방에 넣었다. 다음 날, 친구에게 자랑하며 말했다. “이게 우리 아빠야.”(변명이 있다면 그땐 정말 아빠인 줄 알았다.)
참 웃긴 일이다.(그땐 외삼촌과 말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 대화를 들은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희애가 사진을 들고 와서 아빠라고 하네요. 혹시 훔쳐온 건 아닌가 걱정돼서요.”
선생님은 무엇을 걱정하신 걸까.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없는 아빠를 만들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을까. (뭐가 되었든 선생님은 비밀은 지켜주는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엄마는 전화를 끊자마자 내게 물었다.
여섯 살의 아이에게 주어진 조언은 ‘손들고 서 있기’였다. 종아리가 얼얼해질 때까지 회초리를 맞고,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거실과 방을 두고 세워진 반투명 여닫이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나는 억울한 눈빛으로 문 사이로 비치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봤다. “나는 훔친 게 아니야… 그냥 나도 가지고 싶었을 뿐이야.”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 없던 마음을 눈빛으로 보내보지만, 애석하게도 반투명한 문이 나의 시선을 가린 걸까. 엄마는 책상 앞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잘못이 뭔지 다시 생각해.”
게임이 잘 풀리지 않으면,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만 반복될 뿐이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빠라는 사람이 뭐길래 이러는 것인가였다.
반투명한 창에 내 눈물이 빛으로 반짝였다. 그 장면이 내 기억의 시작이다. 기쁨이 아닌, 슬픔의 시작에서 인생이 시작되었다. 기억은 선택적이다.
참 이상하게도, 슬픔의 기억만은 강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