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즐거운 기억 한 조각, 눈 내리던 날 30분
엄마와 지냈던 기억 중 대부분은 맞거나, 울거나, 눈치를 보거나 셋 중 하나였다. 그땐 그게 힘들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 7년 차 희애가 겪기엔 꽤 무거운 하루들의 모음이었다. 엄마는 나를 몹시 부끄러워했다. 아마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집 외에는 좀처럼 밖에 나갈 수 없었다. 등하원길에도 엄마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파파라치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집으로 숨듯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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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이었다. 8살이 되기 몇 달 전, 창문 밖으로도 함박눈이 소복이 쌓였다. 내가 다니던 교회 어린이집은 방학도, 휴일도 없던 곳이었지만 그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휴원 공지가 내려왔다.
엄마도 들뜬 걸까. 그날따라 나의 눈을 다정히 마주 보며 물었다. “너, 눈놀이 하고 싶어?” 나는 습관처럼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관심 없는 척했지만, 7살의 눈동자 속 설렘은 숨길 수 없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묶어주고, 패딩을 입혀주고, 장갑을 끼워주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도서관까지 데려다줄게. 거기 앞에서 잠깐 놀다가 들어오자.”
아파트와 어린이집 사이에는 1층짜리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 앞마당은 마치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둔 놀이터 같았다. 엄마는 그날, 단 하루 내 행복을 허락했다. “희애야, 장 보고 올 테니까 딱 여기서만 놀아. 어디 가지 말고.” 엄마가 돌아서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굴만 한 눈덩이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 때, 또래의 한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그 아이의 엄마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랑 조금만 놀아줄 수 있을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지만, 그 아이는 말없이 내 손을 살짝 잡았다. 그 손끝이 눈보다 차가워서, 이상하게 더 오래 잡고 싶었다. “안녕?” 그 목소리는 함박눈보다 맑았고, 그 순간 내 안에 조용히 무언가가 녹아내렸다. “나 엄마 오기 전에 눈사람 만들어야 해.” 괜히 쑥스러워 그렇게 말했지만, 그 아이는 말없이 내 옆에 앉아 눈을 함께 덮었다. 눈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숨결이 하얗게 섞였다.
한참을 만들다 남자아이가 말했다. “이거 재미없다! 우리 그냥 놀자.” 그 말에 나는 잠시 얼었지만, 그의 눈빛이 따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눈 위에 나란히 누웠다. 하늘은 끝도 없이 희었고, 눈송이는 천천히 내려와 얼굴 위에 녹았다. 얼굴이 시릴 만큼 추웠지만, 그때만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누가 더 눈을 많이 먹나, 누가 더 손바닥 위에 눈을 많이 모으나,
그 짧은 시간 세상에는 오직 우리 둘 뿐이었다.
잠시 뒤, 그 아이의 엄마가 왔다. 나는 손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눈 속에 점처럼 작아지는 두 사람을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그 아이의 발자국이 점점 사라질 때쯤, 가슴 한편이 시리게 비어버렸다.
그때 엄마가 다가왔다. “하… 넌 30분도 안 지났는데, 이렇게 더럽게 놀아?” 엄마는 내 옷에 묻은 눈을 털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녹으며 젖은 소매가 차가웠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날 이후로 며칠 더 눈이 내릴 때마다 나는 그 아이를 떠올렸다. 어린이집 가며 눈송이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그 손의 온기와 그 웃음이 되살아났다. 한 번만 더, 그 친구와 놀고 싶다.
그날의 30분은 엄마와 살면서 내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나에게 허락된 단 30분이, 몇 년의 기억을 덮을 만큼 따뜻했다. 희애는 아직도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그날의 눈은 이미 다 녹았지만, 그때의 마음은 아직도 내 안에 소복이 쌓여 있다. 그리고 문득, 그때의 미소를 떠올리면 생각한다.
어쩌면 그 모든 따뜻함은 그 남자아이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희애는 그날, 처음으로 ‘다정함’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다정함은 한 사람을 오랜시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