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욕심이 머문 자리에, 아이의 밤이 있었다.
항상 어린이집 하원은 엄마 몫이었다. 엄마가 일을 다녔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방과 후까지 남는 아이들 중 내가 제일 늦게 가곤 했으니까 — 희애는 엄마가 늘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아직 다섯 명이나 남아 있는데, 엄마가 오셨다는 것이다.
“희애야, 엄마 오셨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희애야? 집에 가야지?”
선생님이 내 앞으로 와서 조심스레 말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속으로는 너무 기뻤다.
(오늘은 마지막 퇴장이 아니구나!)
빠른 속도로 노란 가방을 메고, 몸보다 큰 패딩을 껴입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엄마 옆에 낯선 아저씨가 서 있었다. 울퉁불퉁한 얼굴, 차가운 눈빛, 그리고 처음 보는 큰 체격. 나는 걸음을 멈췄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아저씨 앞으로 데려가며 말했다. “희애야, 이 사람은 희애 아빠야.” 그 말이 낯설었다. 아빠라는 단어가 입안에서 둔하게 울렸다.(나는 그럼에도 그냥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굳고, 몸이 스스로 엄마 뒤로 숨었다. 아저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타자, 추우니까.” 엄마가 뒷문을 열며 부드럽게 말했다. “희애야, 아빠가 맛있는 거 사주신대.” 무엇을 사준다는 건지 몰랐지만, 나는 패딩 끈만 만지작거리며 차에 올랐다.
차 안에는 낯선 냄새가 났다. 새 차도 아닌, 향수도 아닌 — 어른들만의 냄새. 엔진 소리와 히터 바람이 섞여, 작은 웅웅 거림 속에서 나는 한참 말없이 바깥 풍경만 바라봤다. 도착한 곳은 대패삼겹살집이었다.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괜히 반갑게 “이거 맛있어”라며 고기를 올리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들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희미하다. 식당, 카페, 공원… 아저씨는 나와 친해지고 싶었던 걸까. 같이 갈 수 있는 곳을 다 들른 듯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생각했다. ‘집에는 언제 가지?’ 그리고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집이 아닌 곳이었다. 간판의 글씨는 희미했고, 복도는 좁고, 공기에는 낯선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집은 언제 가?” 엄마는 잠시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오늘은 밖에서 잘 거야. 내일 집에 가자.”
방 안은 작았다. 불빛이 노랗고, 침대는 한쪽 벽에 딱 붙어 있었다. 이곳이 오늘의 ‘집’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코끝에는 낯선 냄새가 배어 있었고, 공기는 묵직하게 느껴졌다. 내 작은 몸이 온전히 그 공기에 잠식될 것만 같았다. 나는 억지로 피곤한 척을 했다. “엄마, 나 씻고 잘래.” 엄마는 미소 지으며 내 옷을 갈아입혀주고, 벽 쪽에 나를 눕혔다.
잠에 서서히 들었고, 불빛이 천천히 깜빡였다. 잠깐 잠에서 깼을 때 방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서 낯선 숨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람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그건 바람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몸이 굳어버렸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가슴속 어딘가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모르는 세상에도 문이 있고,
그 문은 내가 원치 않아도 열릴 수 있다는 걸.
어린 나는 그저, 오늘만은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견디는 동시에, 나는 작은 힘을 느꼈다. 억지로 숨을 고르고 눈을 감는 동안, 스스로 마음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이 아무리 어른들의 욕심으로 흔들려도, 나는 내 작은 중심을 지킬 수 있다는 걸 그 짧은 순간에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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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그날의 공기를 안다. 그때의 ‘이상한 기분’이 무엇이었는지도 안다. 어른들은 가끔, 자신들의 욕심을 포장하기 위해 타당치 못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 욕심의 그림자 아래에는 항상 아이가 있었다.
그날의 나는 단지 엄마 옆에 있었을 뿐인데, 그 자리는 이미 어른들의 세상 한가운데였다. 엄마와 아저씨가 덜어내고자 한 죄책감 속에서 나는 이해받지 못할 상처를 얻었다. 어른들의 온도, 냄새, 공기의 무게를. 그 기억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의 아이 앞에서 내 마음을 다듬는다.
어른의 욕심이 또 다른 아이의 세상을 흔들지 않도록.
아이들은 모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날의 공기, 냄새, 눈빛까지 다 기억합니다.
어른의 욕심이 머문 자리에, 아이의 마음은 그 자리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