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이 시린, 봄의 시작 (2편)

모든 것이 바뀌기 전, 마지막 겨울의 숨.

by 문희애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라는 걸, 그날 알았다.


아빠의 마지막 한마디 이후 엄마는 어떤 대화도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마치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갑자기 겉옷을 챙겨 입고 머리를 한 번 매만지더니 일어나려 했다. 나는 급하게 엄마 팔을 붙잡고 물었다. “엄마, 어디가? 나는?” 질문하지 않으면 정말 그대로 사라질 것 같았다. 엄마는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간절함이 담긴 내 목소리는 그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엔 너무 가벼웠다.


신발을 신고 가방까지 멘 뒤에야 엄마는 내게 시선을 맞췄다. “희애야, 아빠 말 잘 들어야 해. 잘 지내고 있으면 엄마 금방 올 거야. 알았지?” 애초부터 이곳에 살지 말지 내게 선택권 같은 건 없었다. 집에 오기 전까지 극도로 불안해 보이던 엄마는 문을 열고 나갈 때만큼은 모든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다.


그렇게 문이 닫혔다. 나는 한참 동안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틈을 계속 보고 있으면 엄마가 다시 고개를 들이밀 것만 같았다. 목구멍은 까끌하게 말라갔고, 눈가까지 서늘해졌다. 울면 엄마가 돌아올까? 내가 문을 열면 바깥에 서 있을까? 엉뚱한 생각들이 뒤엉키던 중, 내게 하나의 확신만 희망처럼 자리 잡았다. ‘그래. 내가 잘 지내고 있으면 분명히 돌아올 거야.’


아빠는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어른의 작은 불편함만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문이 닫힌 뒤 집 안은 갑자기 넓어졌다. 사실 큰 집도 아닌데 엄마의 빈자리가 공간 전체를 비워버린 것 같았다.


말을 아끼던 아빠는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내 방, 화장실, 부엌을 소개했다. 부엌에는 소주병 하나, 아빠 방에는 침대 하나, 내 방에는 책상과 침대. 투박하게 놓인 물건들만으로도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됐다.


한참을 어색하게 있다가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아빠는 말없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내 앞에 김밥을 밀어두며 짧게 말했다. “먹어. 아빠도 먹을게.” 우린 TV도 켜지 않은 채 조용한 소음만 들으며 저녁을 넘겼다. 라면 김 냄새는 평범했지만, 그 평범함 속의 텅 빈 기운이 오히려 더 견디기 어려웠다.


저녁을 다 먹은 후 방으로 들어갔다. 내 방은 현관 바로 옆, 아빠 방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이 이 집에서 유일하게 안도되는 점이었다. 침대 하나와 길게 놓인 책상, 그리고 컴퓨터. 그에게는 필요 없어 보였지만, 내가 온다기에 일부러 마련한 티가 났다.(7살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누우려다 말고 문을 바라봤다. 혹시라도 엄마가 다시 열고 “희애야” 하고 부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거실에서 소주잔과 병이 부딪히는 소리뿐.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몸을 넣었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커튼을 스쳐 방 안에 흐릿하게 번졌다.


눈을 감자 엄마가 신발끈을 조여 묶던 모습이 떠올랐다. 문이 닫히던 소리, 그 직후의 정적까지 함께. 입술을 꼭 눌러 울음을 참았지만 눈가가 먼저 뜨거워졌다. 소리가 날까 봐 조용히 울었지만 금세 베개 한쪽이 젖을 만큼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긴장이 조금씩 풀리면서 졸음이 찾아왔다. ‘잘 지내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오겠지.’ 그 생각을 붙든 채 눈꺼풀은 서서히 무거워졌다. 그렇게 희미한 빛 속에서, 남은 울음이 조용히 밤으로 스며들고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잠이 들었다.


나에게도, 아빠에게도, 기념적인 하루가 시작됐다. 서툴고 엉뚱한 두 사람이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기대며 그럴싸하게 살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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