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도시 류블랴나에서 만나는 사랑과 혁명의 축배 ‘프레세렌’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것이 낫다
- 피터 베넨슨(Peter Beneson), 앰네스티 창립자
식민지배자의 언어였던 독일어가 아닌
슬로베니아 사람들의 말과 글로 노래했던 시인이자, 법률가 프란체 프레세렌 France Prešeren.
불행했던 자신의 사랑을 모티브로 인간에 대한 고뇌, 식민통치자들로부터 핍박받는 조국에 대한 시를 썼다.
그의 시는 슬로베니아 인들의 가슴에 독립의 불꽃을 지피고, 꿈을 단단히 간직하게 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식민지의 약탈당하고 핍박받는 피지배계급이 아닌 독립국의 당당한 시민으로서의 꿈과 미래를 말이다.
슬로베니아는 수도 류블랴나의 중심에 그런 프레세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고 그 자리에는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고의 대학인 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카톨릭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비엔나에서 호머와 괴테에 대해 최고 수준의 공부를 하면서도 실제로 그의 관심은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인들에게 가 있었다.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도시국가 피렌체 출신의 이 세 사람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으로 세상을 설명했다. 인간을 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수동적 생물체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 개체로 인식하였고 자신들의 세속적인 나라가 더 강력해져서 외세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를 갈망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서정시를 좋아했던 그는 제수이트 학교에서 문학 선생으로 재직하던 중 친구로부터 금지된 시가 실려있는 소책자를 빌렸다가 해고당하기도 하였다.
1833년 수도 류블랴나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의 딸, 운명의 여인 프리미체바 줄리아 Primičeva Julija 를 만났다. 그녀는 그가 이루어지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었다.
1833년 상류사회 <카지노-게젤샤프트, Casino-Gesellschaft>의 일원이 된 그는 1834년, 1835년 극장과 연회에서 줄리아를 만났고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었다. 프레세렌은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기회가 그렇듯 연기처럼 사라지고는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836년 경 그는 줄리아가 변하지 않을 사랑의 대상임을 깨달았으나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후 였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듬해 만난 안나 옐로브셱 Ana Jelovšek과의 사이에서 3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나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줄리아를 향하는 사랑의 감정은 지워지지도 덧칠되지도 않는 순수한 원본 그 자체였다.
1846년 크란이 Kranj에서 오랜 꿈이었던 자신의 로펌을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안정과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리기 시작했지만 3년 후 사망한다.
줄리아를 결코 잊었던 적이 없었노라고... “나의 인생은 불행했노라고.”
그래서일까?
프레세렌의 동상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줄리아가 살았던 노란색 집이다. 정문 위에는 여성의 붉은 색 부조가 있는데 그 인물이 프리미체바 줄리아다.
소설 <연금술사>로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의 1998년 작품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앞부분에도 주인공 베로니카는 류블랴나 구시가 중심에 위치한 프레세렌 광장을 바라보며 이 시인의 가슴 아린 이야기를 하고 있다.
1848년 혁명과 축배 Zdravljica
1847년 ‘변호사 프란체 프레세렌의 시’라는 시집을 발간하였고 거기에 수록된 애국시 "축배 Zdravljica"는 태풍의 눈처럼 슬로베니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뜨겁게 자리하게 된다.
자유, 평등, 형제애, 슬로베니아의 독립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영국,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벨기에 등으로 들불처럼 강렬한 기세로 퍼진 역사상 세계 최대의 혁명.
슬로베니아를 그대로 지나치지도 않았고 그를 그냥 놔두지도 않았다.
젊은이들에게 프레세렌은 민주주의와 국가의 이상적 영웅이자 아이돌이 되어 있었다.
시 ‘축배’의 각각의 구절들로 만들어진 하나의 연을 와인잔의 모습을 만들었다. 나중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슬로베니아가 독립하면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행복한 마음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기를 기원하며 각 연의 형태가 와인 잔 모습을 하도록 했던 것이다.
시가 어떤 모양이나 패턴을 보이는 경우 카르멘 피규라툼 Carmen figuratum이라고 한다.
시 ‘축배’는
1905년 스탄코 프렘를 Stanko Premrl이 곡을 붙여
1917년 11월 18일 그랜드 유니온 호텔에서 초연을 했는데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1980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후 슬로베니아 국가로 지정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악랄하고 비열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3번째 구절과 4번째 구절에서 각각 두 개의 연을 일부러 뺐다고 한다.
독자들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3번째 구절,
"V sovražnike 'z oblakov
rodú naj naš'ga treši gróm"
“구름 같은 적들을
천둥으로 응징하자”
4번째 구절은 남슬라브 민족의 동질감에 일깨우는 것으로
"Edinost, sreča, sprava / k nam naj nazaj se vrnejo"
“단결, 행복, 화해 / 그 시기로 되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