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동업 – 돈, 가족 그리고 HSP의 오만함

by Huh

1. 가족과 함께 일하다


나는 24년 6월부터 동생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함께’.


2. 나를 HSP로 정의한 사람


나에겐 털털한 면도 있고 섬세한 면도 있다.

어느 시점에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내 기질은 꽤 다른 양상을 띤다.


회사 생활 중 알게 된 한 선배는

내게 HSP라는 개념을 알려주며,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윤형이는 HSP야”라고 말하곤 했다.


선배는 HSP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매일 내게

주변 인물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진심으로 듣던 나는 점점 닳아갔고,

마음은 먹칠이 되었다.


그리곤 선배와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고,

부서 이동까지 했다.


1년쯤 지났을 무렵,

휴직 중이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업무 시간에 잠시 집으로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부탁은 난감했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어린 후배에게 다시 연락하는 일이

선배에게도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내 마음은 숨긴 채 선배의 집을 찾았다.


그날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동안 선배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내겐 고통이었다”는 말은 끝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선배는 다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날부터 퇴사하던 날까지,

나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3. 말하지 않아도 느낀다는 것


나에게는 네 살 차이의 동생이 있다.

민첩하고 눈치 빠른 나와 달리,

동생은 순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늘 동생을 걱정했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동생이 인간관계로 힘들어할 때마다

그 일을 내 일처럼 아파했고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어 했다.


대학 OT를 앞두고는

친구 관계를 걱정하는 동생의

머리를 고데기로 펴주고 옷을 골라주며

좋은 친구를 만나길 함께 기도했다.


그만큼 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늘 동생에게 가 있었다.


부모님이 페루에 가 계셨을 때,

동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에너지 드링크만 마신 채 무리를 하다

숨이 안 쉬어진다며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다.


최선은 다했지만 연이은 불합격 속에서

나는 동생에게 다른 선택지도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동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동생은 취업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서류 낙방이 반복되며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나는 친구가 다니던

정신의학과 선생님을 연결해 주었다.


이후 동생은 약 5년간

우울증과 공황장애 아래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세 번의 자해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늘 동생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내 삶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돈을 주고, 선물을 주고,

마음까지 주며 동생의 버팀목이 되려 했다.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오은영 박사님이 말하는

‘오만한 사람’의 특성인 것 같았다.


맞다. 나는 너무도, 지독히도 오만했다.


4. 함께하는 일의 구조


24년 4월, 퇴사했을 때

나는 당연히 이직을 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 서류를 써보지도 않았음에도

이직이 쉽지 않겠다는 걸 직감했다.


그 무렵 하던 부업을

동생과 함께 하게 되었고,

처음엔 각자 번 만큼 가져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수익 격차가 벌어지자

동생의 좌절과 조급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수익을 합쳐 5:5로 나누자고.

그때의 나에게 5:5는

사랑과 배려, 그리고 평등의 언어였다.


사업은 점점 커졌고,

나는 자동화 프로세스를 도입하며

방향성과 기획을 맡았다.

밤낮없이 나를 갈아 넣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선의로 제안했던 5:5는

동생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어 있었다.


수익 비중이 7:3이어도 정산은 5:5였고,

그 구조 속에서 동생은

자신의 채널을 키우기보다

정해진 루틴을 수행하는 데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회사가 왜 구성원의 보상을 쉽게 늘리지 않는지,

왜 사업가들이 지분을 함부로 나누지 않는지를

몸소 이해하게 되었다.


5. 나를 지키는 연습


나는 오늘,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수익 구조 변경을 제안했다.


사업자 분리도 고민했지만

이미 내가 만든 자동화 툴로 수익이 나는 상황에서

같은 툴로 사업자를 나누는 건

내부 싸움에 가깝다고 느꼈다.


결국 지금과 같은 구조 안에서

수익 비중을 조정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여전히 동생이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해왔던 배려들이

내 안에 상처로 쌓이고 있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히 느낀다.


언젠가 남편은 내게 말했다.

“네 아이패드 프로, 동생한테 돈 받고 팔아.

그래야 동생도 마음 편해.”


그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오늘 나는 그 아이패드를 10만 원을 받고 팔았다.


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위해서.


동생은 작년에 내가 주었던 돈도

나눠서 갚겠다고 말했다.

오늘 밤 11시까지 일을 하고,

지친 얼굴로 택시를 부르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역시나 무거웠다.


동생이 이제야 자리 잡아가는데

꼭 지금 이 말을 해야 했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했다.


그동안 반복해 왔던

그 오만함을 내려놓을 때가 왔다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무상으로 베푸는 것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고.


나는 38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동생에게 받는 연습을 했다.


마음이 괜히 아프고 낯설지만,

이 역시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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