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절맞이 희준이와 포항에 다녀왔다.
희준이와 함께 산지 5년,
혼인신고 한지도 2년이 지났다.
나는 내 인생에
결혼 남편 며느리 시댁 같은 단어는
없을 줄 알았고 없길 바랐던 때도 있었다.
서울 남자만 만나왔던 터라
명절에 기차 타고 포항에 가는 게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일 때도 있었다.
내가 가진 것과 희준이 가진 것
나의 가족이 가진 것과 희준가족이 가진 것을
나도 모르게 비교하며 부족함을 느낄 땐
손해 보는 마음이 들던 때도 있었다.
처음 포항에 갔을 땐 경계심이 컸고
촌스러운 걸 극혐 하는 나라
조금이라도 촌스러움을 느낄 때면 예민해졌다.
2.
가끔 희준이 부모님께서
너네 회사는 돈 많이 안 주지 않니
희준이 사촌 형이 이직한 회사는
돈을 많이 준다더라는 말을 하실 때면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저 연봉 1억 넘는데요! 라며 받아치기도 하고
희준이한테
넌 왜 네가 버는 돈을 명확히 말하지 않아서
나까지 무시당하게 하냐며 갈구던 때도 있었다.
또 내가 자회사로 이직을 할 때도
어머니는 팀장이건 머건
자회사는 안정적이지 않아 별로 다는 입장이셨고
나는 내가 잘해서 가는 건데 왜 몰라주냐며
서울 며느리의 잘남을 증명하려 했다.
(뒤돌아보니, 갓머니.. 선견지명)
퇴사 후 나는 희준에게 시댁에는
나의 퇴사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이순신 감성)
결혼 과정 중 우리 두 집안의 분위기를 봤을 때
내가 이직을 하지 않는 이상 사업의 결과와 관계없이
걱정은 endless 일게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시댁은 내가 회사 다니는 줄 아신다.
내 눈썹 피어싱도 비밀이기에 (비밀이 많은 사람)
이번에도 눈썹에 대일밴드를 붙이고 내려갔다.
3.
9월 부 시작된 업무 프로세스 변경에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포항 가기 전날 희준이는 자기가 일을
도와줄 테니 새벽 2시엔 꼭 자라고 해서 겨우 잠들었다.
그렇게 출발했는데 대전까지 입석이었다.
기차는 춥고, 몸은 피곤해서
결국 포항 도착하자마자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댁 돌침대에 누워 12시간을 내리 잤다.
중간에 깨면 맛있는 거 먹고 또 잤다.
삼겹살 먹으러 집 앞에 나갔을 땐
파란 남방 위에 어머니가 주신 빨간 조끼를 입었는데,
거울을 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서울이라곤 근처에도 안 가본 초강렬 촌티.
소생 불가로 판단되어 그냥 그 차림으로 다녔다.
내 사랑 시민제과 찹쌀떡도 먹고,
가족들이랑 산책도 하고,
중간중간 요가로 몸도 풀어줬다.
희준이네 가족들은 캐릭터가 확실해서
보고 있으면 꼭 순풍 산부인과 보는 기분이다.
4.
언젠가부터
친정에 가는 것보다 시댁 가는
게 몸도 마음도 더 편하다.
우선 어머니랑 내가 체질이 비슷하다.
돌침대처럼 뜨끈한 걸 좋아하시니 나 또한 지지기 좋고
나의 개인 화장실도 있으며
무엇보다 이 집은 어머니가 ‘문제 해결사’다.
그래서 내가 나설 일이 없다.
나는 늘 체리피커처럼 어머니 뒤에 숨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말 푹 쉬다 왔다.
시댁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는 표현에서 끝인 거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시댁 식구들의 따뜻한 심성과 배려 덕분일 것이다.
(인성을 1순위로 보고 남자 만난 건 정말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