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불리는 순간 꽃이 되는 사람들

by Huh

1

회사에 다닐 때는

나는 좀 짱박혀 있고 싶은데

자꾸 나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게 피곤했다.


물론 같이 꽁냥꽁냥하는 것 말고,

상대가 자기 궁금한 걸,

자기가 알고 싶을 때 확인코자

날 부르는 게 귀찮았다.


타인과 같이 일할 때

좋았던 점은

내가 좋아하는 타인과 일하는 것이었고,

싫었던 점은

내가 좋아하지 않은 타인과도 일해야 했던 것이다.




2

개인 일을 시작하니,

누가 날 귀찮게 하는 경우는 1도 없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있었던 소소한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무 자르듯 댕강 끊겼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없는 인생 첫 번째 기간.


그 와중에 내가 매일 만나는 희준이는

내가 만나온 사람 중 가장 안정적인 인간이라

내 바이오리듬도 안정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새로운 또는 오래된 인간관계에서 얻는

행복함은 줄어든다. (배때기 불렀쥬)




3

나도 가만 보면 누가 만나자고 해야 만나는 편.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지속적으로 연락 주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T들이다.

(나는 T랑 잘 맞는가 봄)


그리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몇 안 되는 상대들은

대부분 F라는 게 신기하다.



4

그래서 주중에 혼자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는 날이 있다.


일이 끝나면 거의 매일 요가원에 간다.

요가원은 나에게 카페와 같은 공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그 공간 속 타인들과 함께 하지만

타인들과 대화는 하진 않는 바이브다.


오래오래 요가를 무탈하게 하고 싶기에

무리하게 빠르게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5

그런데 우리 요가원은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난 선생님들과 사적인 대화는

거의 해본 적 없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만 하는데,

가끔 나를 모를 것 같은 선생님이

“윤형님”이라고 나를 부를 때 깜짝깜짝 놀랜다.


아 오늘 처음으로 내 이름이 불렸네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의식은 내게 상당히 건강한 영향을 준다.




6

그러면서 그 순간 문득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올랐다.

(실은 아는 시도 없는 편인데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누군가를 기억해 주는 것,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이토록 귀한 마음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7-1)

예전에 유재석이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이 힘들었을 때,

본인에게 기회를 준 PD를 언급하며


누군가를 알아봐 주고, 기회를 주는 게

그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는지

본인은 안다고.


나도 이젠 알 것 같다.


7-2)

지난주 세범이를 만났다.


세범이는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세히 물은 적은 없지만

세범이가 사업을 하며,

정말 잘 되었던 순간도,

정말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던 걸 안다.


그 간 그 순간을 내게 먼저 터놓은 적

없었던 세범인데, 그날 처음 말해주었다.


그 당시 나에게 필요한 건 기회였는데,

그 어떤 친구도 내게 기회를 줄 순 없었다고.


결국 내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고.


진짜 힘들 때 난 정말 배달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근데 그 말이 왜 그렇게도 와닿았을까.


역시 사람은

본인이 어떤 경험을 해봤는지에 따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엄청나게 달라지나 보다.


회사 다닐 때 종종 세범이가 저녁 먹자고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다.


당시 난 세범이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기회를 못 주는 나라도 필요한 건질 몰랐다.


근데 수년이 지나고 이제야 세범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세범이가 정말 힘들었던 순간, 나는 곁에 없었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라도 세범이의 기쁘고 힘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8

퇴사 후 삼성전자 HR 담당자와 술을 마신 적 있다.


당시엔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는 나에게 왜 다시 회사를 다니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누군가를 꾸준히 지켜보면서

장점을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굉장히 얼탱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년아 그걸 왜 회사에서 찾니.. 같은 표정?)


그러든가 말든가.

근데 정말 나는 그 행위를 좋아하고,


지금의 나를 불러주고, 기억해 주고,

기회를 주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나도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



9

그리고, 왜 시인들이 시를 쓰는지,

사람들이 왜 시를 읽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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