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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2. 2023

해볼까 학교 '시와 꽃'

 김해시 해볼까 학교의 시민강사로 선정되어 총 4번의 플라워포엠레슨을 진행했다. 7월에 두 번, 8월에 두 번.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한강 시인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송미선 시인의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총 네 권의 시집을 선정했다. 플라워레슨을 기획한 이유는 단순하다. 꽃을 다듬으면서 시로 수다를 떨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꽃과 시를 사랑하는 나와 닮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시집에 대한 토론주제는 공통으로 정했다.


<공통토론주제>

 1. 시집의 제목만 보고 무슨 뜻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 시집 제목에 대한 단상, 느낌, 해석

 2. 시집의 커버 디자인에 대한 해석

 3. 가장 인상 깊은 시와 구절 / 이유

(시를 2번 낭독해 주세요)

 4. 이 시집을 통해 추측해 보는 시인은 어떤 사람,  어떤 가치관을 중요시하며 시의 특징은 어떠한가

(어디서 어떤 근거로 느꼈는지 책은 인용해 주세요)

 5. 한 가지 시를 정해 제목을 스스로 정해본다면? 바꿔 써본다면? 그런 제목을 단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해진 예산에 맞추어 꽃을 사들이고, 한 다발로 묶었을 때 아름답게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꽃들로 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얼굴이 아름답고 큰 꽃, 휘청이고 흔들이면서 라인을 만들어주는 연약한 꽃, 푸릇푸릇하고 싱긋한 느낌을 더해주는 소재류, 꽃다발이 풍성해 보이도록 양적으로 채워주는 꽃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해볼까 학교를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게는 항상 시집제목이 따라다녔다. 며칠 정리한 생각은 이렇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어딘가 탈이 나면 약을 지어다 먹는다. 보통 약봉지에는 약을 하루 식사 후 한번 3~5일간 복용하도록 적혀있다. 당신의 이름은 나에게 약이다. 그리고 며칠은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병증은 도통 나아지지 않는다. 나는 견디고 견디다가 하는 수 없이 다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먹는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서랍에 넣어둘 때는 두 가지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째는 소중한 물건을 잘 보관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아직 쓸만하고 버리지 않고 보관하기 위해서.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입을 계획이 있는 옷들은 옷걸이에 걸었다. 버릴 옷들은 커다란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중간에 걸친 옷들이 남았다. 이 옷들은 서랍에 넣어두었다. 시인은 왜 저녁을 서랍에 넣었을까? 저녁 시간대를 말하는 거라면 저녁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바일 테고, 저녁 식사를 말하는 거라면 다 차린 저녁상도 물리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심리상태가 아닐까. 하지만 숨이 붙어 있으니 매일 저녁을 맞이할 테고 저녁을 먹어서 허기를 지울 것이 틀림없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 나는 그 상대가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으면 싶다. 그립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밉기도 하다. 상대가 관심 있게 챙겨보는 바다를 핑계 삼아 안부를 전한다. 바다는 잘 있다고.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이미지가 있다. 그늘 아래에서 휴식하고 있는 두 사람. 그늘은 무언가의 그림자다. 나무그늘은 나무의 그림자다. 실외배변만 하는 강아지라 한 여름 해가 뜨거울 때도 오후에 한 번은 산책을 나간다. 정수리가 해의 열기로 뜨거워져 커다란 검정 우산을 들었다. 강아지와 내가 우산의 그늘 속에 함께 들어가도록 이리저리 각도를 조절하며 걸었다. 강아지와 나는 우산의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 제목 바꿔 쓰기


 송미선 시인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를 떠오르게 한다. 검정 양복을 입고 하늘에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남성. 그 남성의 복제본들이 공중에 빽빽이 들어차 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이 그림이 나왔다. 한 교수가 말했다. 이 그림을 현실세계의 진짜 상황이라 가정한다면 무엇인지 설명하라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냈다했다. 같이 출연한 영화감독과 유명인들은 각자의 답을 내놓았다. 나는 번뜩 CCTV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애드벌룬이라고 해도 말이 될 것 같다. 먼 미래 사회에는 누구나 집집마다 CCTV를 설치하고 외부는 공중에 CCTV를 띄워놓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지 않을까. 대기업에서 만든 동일한 디자인의 CCTV가 여기저기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송미선 시인의 시 또한 초현실주의 세계가 담겨있다.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 위의 우산이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아름다워..." -말도르의 노래 중 일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이 한 공간에  있을 때 느껴지는 생경함이 텍스트로 표현되어 있었다. 평범한 것들의 만남은 비범했다. 시의 화자는 폐지리어카에 이름을 버린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을 현수막에 써 붙이거나 전광판에 내달지 않고 버린 이유는 뭘까. 이름을 버리고 나서 공중제비를 돌 만큼 가벼워졌다 하니 이름 때문에 발목을 세게 잡혔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름 없이 사는 대신에 다시 새로운 이름을 얻으러 나선다. 이름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내가 정한 게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진 나의 운명을 거절하고 다시 짓겠다고 다짐한 화자지만 여전히 이 이름을 스스로 짓기보다는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찾아간 곳은 동물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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