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시인의 <무화과 숲>을 읽었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는 구절로 유명한 시다. 그 사람은 무화과 숲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옛날에 있었던 일이지만 쌀을 씻다가도 문득, 창밖을 보다가도 문득, 숲으로 이어진 길만 봐도 문득문득 그 사람이 차오른다. 많은 숲 중에서 하필이면 시인이 무화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은 거대한 무화과 숲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자 무화과 속에 핀 꽃이다. 무화과의 꽃은 속에 핀다. 시인은 속에 꽃을 품은 무화과다. 뭇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무화과구나 시인이구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이구 나하고 쳐다보겠지만 실은 그는 가버린 사람을 품고 그리워하고 있다. 꽃은 속에다 감추고서 문득문득 꽃의 존재를 인지하지만 곧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저녁을 먹는다. 먹는 것에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아침에는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한다. 꽃이라곤 모르는 평범한 무화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시인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