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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2. 2023

꺼내고 싶은 건 따로 있어서

  처음에 시 수업을 들을 때는 이런 생각이었다. 봄학기를 잘 들어서 아기를 위한 시 한 편 나오면 좋겠다. 그런데 아기가 주는 행복은 너무나 크고 짜릿해서 더 깊숙이 안으로 저장하고 싶지 꺼내지지 않았다. 보통은 즐거운 순간은 글로 쓸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발산하고 싶은 건 결핍이나 불안 혹은 고민 같은 것들이다.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아 꺼내 써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또한 성향이라 유쾌한 감정 이외의 감정을 글로 다루고 싶은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거 좋네요."와 "그것 참 안타깝네요." 둘 중 어느쪽의 반응을 보일지도 상대의 성향이다.

    언젠가 수필가는 좋은 시 하나를 수업에서 소개했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지 감탄하는 수필가에게 시는 미지의 세계였다. 글쓰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같은 분야로 묶이지만 또 그 갈래가 나뉘어  시, 수필, 소설이 되고 나면 서로가 '어떻게 저렇게 쓰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된다. 이런 언어선택, 이런 흐름을 가져오다니 수필가로서는 생산해 내기에 완전히 생소한 분야라 했다. 수필가가 만나 본 시인들은 어딘가 특이하고 독특한 구석이 있는 비범한 사람이었으며 외모와 차림새부터 달랐다했다.  미지의 세계는 과장되기 쉽다.

  매주 목요일에 만나는 시인은 친정어머니처럼 포근하고 다정하다. 아드님이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여러 도서관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계속 시작활동을 이어가고 계셨다. 시인의 시집으로 독서토론을 했던 날, 시인의 변을 들었다. 결핍과 불안의 시를 쓰는 시인이라 평가를 듣지만 사실 매우 평범한 일상인이라는 것. 내가 가진 100중에 1일뿐인 결핍을 가지고 시를 쓰더라도 시는 결핍 100이 된다. 독자는 시인을 항상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불안하고 사색에 잠긴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너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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