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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17. 2023

나비의 가루 같은 시

  아이  서넛이 잠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은 손가락 사이로 잠자리 날개를 젓가락질하듯 잡고 있었는데 손가락을 풀자 이내 곧 다시 잠자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언제 붙들렸냐는 듯 다시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하지만 나비를 이렇게 잡으면 안 된다. 나비 날개에는 가루가 있는데 사람 피부에 묻으면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가루 없이 나비는 더 이상 날 수 없다. 비가 오면 빗물에 날개가 젖어버린다. 또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없다. 가루를 삼킨 새들은 복통을 앓고 더 이상 가루가 있는 나비를 쉽게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시인에게도 그런 가루가 있다. 아무 방어막 없이 쏟아지는 비를 홀딱 맞고 며칠을 열감기로 끙끙 앓고 나면 알게 된다. 필요했던 건 우산이나 감기약이 아니라 시라는 걸. 시를 써서 비를 막는다. 시를 쓰는 순간은 몰입의 순간이다. 나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자신하던 마음은 쏟아진 물에 쉽게 젖어버리는 종이와도 같다. 아무리 강력한 내용으로 빼곡히 채워 써 내려갔대도 물에 금세 젖어버린다. 인간은 원하지 않는 자극이 두 어 번만 반복돼도 회복탄력성을 잃고 어느새 원치 않는 타인의 관점을 덥석 물어버린다. 그러니 시를 써야 한다. 쓰는 순간이야말로 모든 걸 집어던지는 비워진 시간이다. 비운 뒤에야 다시 나다운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다.

  나를 이런 차원에서 소개하자면 본업은 영어공부방 선생님, 사생활은 21개월 아기엄마이며, 나는 시를 직업처럼 꾸준하게 지구력을 가지고 써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시는 나비 날개에 묻어있는 가루기에, 놓지 않고 어떻게 어떻게 계속하게 된다. 쓰고 싶을 때마다 문득문득 차오를 때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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