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아, 엄마 말 잘 들어 미정아. 꼭 부탁한다. 지금 오피스텔로 출발했거든? 아빠가? 잘 좀 부탁할게. 엄마가 아빠가 미안하다.”
“뭔 소리야 엄마. 주말 아침부터 왜 이래.”
“틈만 나면 잡아먹으려고 해. 키울 수가 없어. 미정아, 부탁할게. 꼭 좀 지켜줘…”
엄마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늘 나긋나긋했던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조금 걱정됐다. 그렇게 1시간이 조금 넘게 지나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별생각없이 검정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분홍색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갔다.
“아빠!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꼼꼼히 포장된 황갈색 택배상자를 내밀었다. ‘이거 뭐야?’라고 눈으로 물어봤지만, 아무 말이 없는 아빠는 내가 상자를 받자마자 뒤돌아 떠났다. 나는 꽤나 무거운 상자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상자 아래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손잡이인가.
“거기 아가씨! 잠깐잠깐. 상자 좀 보입시더.”
“어 경비아저씨. 상자는 왜요?”
“하이고 위에서 말이야, 아침부터 전화해가지고~ 어떤 미친놈들이 개새끼 숨길 수 있다고~ 민원 들어오면 책임 물을 거라고~ 난리도 난리도 아니야 아주.”
“네? 그게 뭔 소리예요.”
“하 이 아가씨가 뉴스도 안보는가. 아무튼 상자 좀 보소. 자자~ 김치, 멸치… 반찬 가져다주신거여? 이건 또 뭐여, 어이쿠 남사시러워라. 미안해요. 언능 들고 들어가셔.”
“아이 엄마도 참. 뭔 속옷을 이렇게 많이… 수고하세요.”
‘개를 숨겨? 그게 다 뭔 소리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뉴스를 검색했다. ‘**아파트 30대 남성, “어디 드럽게 집에서 개를 키워” 옆집 무차별 폭행’, ‘아랫집서 키우는 개 몰래 잡아먹은 50대 여성, 훈방조치.’ 뉴스는 온통 이런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집에 들어온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상자를 정리했다. ‘엄마도 참 브래지어랑 팬티를 뭐 이리 많이 넣었대.’ 브래지어를 조금 치우자 작고 하얀 솜뭉치가 보였다. 꿈틀. 솜뭉치가 움직였다. 뭐지. 조심스레 들어 손 위에 올려보니 손바닥도 가득 채우지 못할 정도로 작은, 온몸이 하연 새끼 강아지였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조용히 꼬물거리는 녀석은 처한 상황을 동물의 본능으로 깨달은 건지 ‘낑낑’거림 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제 딴에는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가씨 아까 경비여. 아무래도 다시 살펴봐야 쓰겄어. 문좀 열어주소.”
이 녀석은 손바닥 위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꼬물거렸다. 꼬물꼬물. 조금 전 엄마 목소리가 생각났다. 나는 이녀석을 꺼내 방으로 뛰어들어가 속옷 서랍 깊은 곳에 파묻었다. 조심스럽게 최대한 깊숙이, 서랍 저 아래 이녀석이 나오지 못할 곳까지. 하얀 솜뭉치가 그 사이에서 울지 않기를 바랬다. 깜깜한 서랍 안에서 잠시동안 잠에 들기 바랬다. ‘잠시만요.’ 상자를 열어놓고 문으로 뛰어갔다. 문이 열리고 하얀빛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부셨고 눈앞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