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어 수진 언니. 뭐야 다른 언니들도 같이 왔네?”
“방금 밑에서 만났어. 야 근데 밖에 사람 진짜 많더라.”
“그러니까. 우리도 ‘돼사모’로서 참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치! 나도 그 생각 했어. 누가 우리 루이 구워 먹고, 잡아먹는다 생각하니까… 으 진짜 소름 끼쳐. 진짜 미친 새끼들 아니야? 대체 돼지를 왜 먹는 거야? 그렇게 처먹을 게 없나.”
창문 밖은 여전히 쓰나미처럼 거대한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지금 안에서 돼지 얘기를 하는 것처럼 저들도 온통 돼지 얘기를 하고 있겠지.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설 <나는 전설이다> 속 네빌이 떠올랐다.
1년 전. 유난히 일이 많아 이리저리 치이고 정수리가 벗겨진 남자부장이 내 허벅지를 주물렀던 날. 나는 하루 종일 흡혈귀들과 싸우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엘리베이터 문에 고개를 박고 나지막이 뇌까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는 늘 계단으로 다녔다. 3층이라 높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 언니! 반려동물 키워요?’ 아차. 나는 사료와 간식을 꼭 껴안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얼마 전 옆집으로 이사 온 지수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진짜? 몰랐네! 어떤 동물? 역시 미니미 돼지겠지? 언니 그럼 돼사모 들어와요! 돼지를 사랑하는 모임! 푸하하.’ 거절하려는 내 입을 지수가 막았다. ‘어 엘리베이터 왔다. 언니 계단으로 갈 거죠? 아무튼 다음 주 토요일날 모임이니까 사거리 3층 카페! 2시까지 오면 돼요! 그럼, 그때 봐요!’ 그렇게 나는 한 달에 한 번, 1년째 돼사모 모임에 나가고 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 코코의 주인으로서.
“미정 언니,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이리 안 좋아?”
“야 뭐래. 언니 지금 완전 신나 보이는데? 언니 표정 원래 이렇잖아. 너 놀리는 거지?”
“아니거든? 그나저나 이거 봐봐. 우리 콩이가 어제 개인기 했다니까? 내가 손으로 브이 만드니까 거기에 코를 갖다 대는 거 있지? 너무 귀여워!”
“야야 우리 별이 봐봐. 빵 하니까 쓰러지는 척도 했다니까? 이 정도면 천재 아니야?”
“조용조용! 내가 어제 대박인 거 찾았다. 짠! 이게 유기농 개고기로 만든 떡갈비 간식인데, 돼지 몸에 그렇~게 좋대. 엄청 비싼 건데 오늘까지만 할인한단다. 자 이 누나한테 박수!”
“야 미친 거 아니야? 당장 링크 보내.”
돼지, 돼지, 돼지, 돼지… 나는 조용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개고기가 인기를 끌며 세상에서 돼지가 사라지는 듯했으나, 돼지 농가의 마지막 발버둥이 보기 좋게 먹혀 들었다. ‘미니미 돼지.’ 기존 반려 돼지인 미니 돼지를 절반 정도의 크기로 개량해 더 키우기 쉽게 만든 돼지였다. 다 커도 40kg이 넘지 않을 정도로 작아 어디서든 키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새끼일 때의 치명적 귀여움이 ‘개’라는 반려동물을 잊은 사람들의 허전함을 단박에 채웠다.
돼지 농가는 ‘돼지는 우리 가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그동안 벌어들인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연예인, 인플루언서, TV 광고, 유튜브 광고 등 할 수 있는 광고는 모조리 했다. 유행에 민감한 20대를 주축으로 미니미 돼지는 빠르게 퍼져 나갔고, 점차 30대 40대, 60대까지 확산됐다. 5년이 지난 지금 미니미 돼지는 모든 가정에 한 마리씩은 있는 그들 말로 ‘소중한 가족’으로 변모했다. 곳곳에 보이는 돼지동반 카페, 돼지 유치원, 돼지 호텔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 배고프다. 이제 슬슬 갈까?”
“그래. 나도 배고프다. 빨리 밥 먹으러 가자.”
“언니! 미정 언니!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밥 먹으러 갑시다.”
7월 11일, 초복의 태양은 늦은 다섯 시 반임에도 여전히 강렬했다. 푹푹 찌는 더위 때문인지 시위는 다섯 시쯤 종료됐다. 덕분에 발 디딜 틈조차 없던 거리는 상대적으로 한산해졌고 뿌옇던 거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먹자골목인 이곳은 가운데 대로를 중심으로 양 옆에 식당이 가득했다. 개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는 수육 전문 식당, 개 뼈와 고기로 진하게 끓여낸 빨간 개고기탕, 오늘처럼 더운 여름에 즐길 시원한 개고기 냉채까지… 모든 간판에 개고기가 적혀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토요일 저녁, 식당 대부분이 사람으로 붐볐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벌써 빈 소주병이 수두룩한 테이블도 더러 있었다. 왼쪽 개고기 삼겹 전문 식당에서는 얼큰하게 취한 남자들이 저마다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시원한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놓고 숯불에 잘 구워진 개고기 삼겹을 입에 집어넣는 그들의 얼굴에는 ‘크 이거지.’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빛이 전체적으로 감도는 정육점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 정육점’.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투명하고 둥근 유리 안, 선 분홍빛이 고기를 먹음직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육회, 삼겹살, 목살, 배받이살 등 다양한 고기가 진열돼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고기 좋습니다. 한번 보고 가세요.’ 턱수염이 덥수룩 하고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은 푸근한 정육점 남자가 정겹게 말을 붙여 왔다. 나는 정육점 남자를 바라보다 그 뒤, 발가벗겨져 걸려있는 개와 눈이 마주쳤다. 털이 다 뽑혀 가죽이 드러난 개, 가죽이 다 벗겨져 시뻘건 모습으로 걸려 있는 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직 밝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개고기 인기는 증가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에 ‘돼지고기’는 한순간에 찾아보기조차 힘든 음식으로 전락했다. 돼지는 지방이 너무 많다, 돼지 지방은 비만세포를 증가시킨다는 등 각종 매체와 언론은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돼지고기를 비판했다. 더 이상 팔팔 끓던 돼지고기 기름에 김치를 통으로 구워 잘 익은 삼겹살과 함께 먹는 광경은 찾아볼 수 없어졌다. 돼지가 아니라 오로지 개를 찾았다. 개, 개, 개, 개… 끝없이 개를 찾았고 끝없이 개를 먹어 치웠다. 지구상의 모든 개를 몸의 일부로 소화할 것처럼. 세상은 온통 개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