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싫지만 권리는 누리고 싶은 간사한 나에게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휴대전화 알람을 끄고 눈을 떴다. 평소라면 알람을 끄고 십 분 이십 분 더 잘테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잠들 뻔한 사실에 화들짝 놀라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나왔다. 일요일 아침, 집은 멈춘 듯 했다. 아빠는 거실 한복판에서 곤히 자고 있었고 작은 숨소리를 제외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건물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외로워 보였다. 원래라면 바로 씻으러 갈테지만 냉장고문을 열고 점심에 먹을 계란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파, 계란, 소금 그리고 밥을 꺼냈다. 전자레인지 용기에 담긴 밥을 돌리고 인덕션을 켰다. 시계는 일곱 시 삼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고 있는 엄마가 신경 쓰였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파를 잘라 넣었다. 파가 약간 탈 때까지 충분히 익혀준 후 계란과 밥을 넣었다. 간장을 살짝 태워 달짝 지근한 맛과 향을 입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간만에 하는 요리에 사진도 찍고 계란과 밥이 고루 섞이도록 잘 볶아주었다. 소금을 넉넉히 둘러 간도 맞추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시계를 살피니 일곱 시 사십 오 분이었다. 내가 도시락을 쌀테니 일어나지 말라고 말한 자신이 미워졌다. 그러다 따라오는 독립심과 자립심에 대한 이상적인 이야기들에 약간의 죄책감이 따라왔다. 닫혀 있는 안방에서 자고 있는 엄마가 자꾸 신경 쓰였고 얼굴이 조금 찌푸러졌다. 서둘러야 했다.
계란 볶음밥을 완성하고 용기에 담았다. 너무 작은 용기를 꺼내 다른 그릇에 옮겨 담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혹시 배가 고플까 바나나 하나와 두유 하나도 챙겼다. 가방을 챙긴 후 데운 국에 남은 밥을 말아 물 마시듯 식사를 마쳤다. 좋아하는 파김치를 올려 먹고 싶었지만 시계는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릇을 개수대에 던져 놓고 화장실로 갔다. 엄마는 곤히 자고 있었고 나는 괜스레 문을 쌔게 닫았다. 어제 꺼내 놓은 회색 트레이닝 바지와 검정 후드티를 입고 차 키를 챙겨 차에 탔다. 여덟 시 십 오분. D버튼을 누르고 서둘러 출발했다. 삼십 분 까지 도착해야 했기에 엑셀을 꾹 밟았다.
휴대전화 알림에 정신이 들었다. 알림이 세번 정도 울렸을 때 눈을 한 쪽만 뜨고 몸을 반만 일으켜 휴대전화를 가져왔다. 아침 일곱 시 삼십 분. 알람을 끄고 휴대전화를 베개 옆에 던졌다. 바로 일어나 굉장히 피곤했던 꿈을 꾼 듯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눈을 감았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푸근한 베개의 감촉을 느끼니 천국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 시 사십 분. 휴대전화 알람에 눈을 떴다. 시끄러운 알람을 끄고 인스타그램을 켰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정신이 들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동그랗게 떠 있는 스토리를 눌렀다. 술 먹는 사진, 저녁 먹는 사진, 요리하는 사진 등 다양했다. 갑자기 냉장고를 열고 계란과 밥을 꺼내 볶음밥을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피곤함이 몰려와 스토리를 옆으로 넘겼다. 넘기고 또 넘겼다.
“언능 일어나.”
엄마 목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을 어떻게 잔 건지 한참 내려간 바지와 뻗어 있는 머리,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주방에 갔다. 당연하다는 듯 식탁 위 사과를 집어 입에 넣었다. 물로 헹구지도 않은 찝찝한 입으로 빨간 사과를 껍질 째 씹었다. 사과는 달고 시원했다. 의자에 앉아 국에 말린 밥을 입에 넣었다. 따듯한 국이 넘어가자 속이 편해졌다. 식탁에 놓여있는 젓가락을 집어 김치를 찾았다. 눈 앞에는 파김치가 있었다. 좋아하는 파김치를 입안 가득 씹으니 몸은 약간 상기됐다. 엄마는 추운지 민트색 카디건을 입고 싱크대에서 다 먹은 사과 그릇을 설거지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딘가 서둘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여전히 졸려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대충 양치를 하고 어제 꺼내 둔 옷을 입었다. 회색 트레이닝 바지와 검정 후드티를 입고 차 키를 챙겨 차에 탔다. 여덟 시 이십 오 분. D 버튼을 누르고 출발했다.
신호에 걸려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벌써 세 달도 넘게 다니고 있는 아르바이트니 당연하다 단정하기에는 조금 달랐다. 엑셀을 강하게 밟고 빨리 가야할 것 같은 느낌… ‘빵’. 뒤에서 들려오는 짧은 경적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 직진코스를 달려 다시 신호 앞에 섰다. 라디오에서는 녹화된 방송분이 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정신이 들지 않았지만 시끌벅적하게 들려오는 말소리와 농담 따위가 섞인 말재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시계는 여덟 시 삼십 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덟 시 삼십 분 까지 도착해야 했지만 혼자 오픈하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신호가 길어지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서 계란 밥 따위를 꺼내는 모습. 시계를 확인하며 급급하게 움직이다 발목을 삐끗할 뻔한 모습… ‘빵’. 뒤에서 들려오는 짧은 경적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좌회전을 하고 유턴을 하니 가게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기 전 시계를 확인했다. 여덟 시 사십 분. 아홉 시 오픈이기에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가방에서 공부할 책과 노트북 그리고 계란 볶음밥을 꺼냈다. 혹시 배가 고플까 챙긴 바나나와 두유도 꺼냈다. 계란 볶음밥은 여전히 따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