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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문학동네」

by 바람


‘그녀를 지치게 하는 것은 상투적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대하는 그녀의 상투성인지도 모른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번 반복하는 내 삶의 루틴에 지겨워 하루하루 질척거릴 때 이 문장이 내 뒤통수를 한 대 때려 줬다.


반가웠다.

‘새의 선물’에서 열두 살에 다 커버렸다고 주장하는 진희를 보고 싶었는데 이 소설에서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안타깝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더 단단한 외투막을 쓰고 안간힘을 쓰며 사람을 밀어내는 진희에게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지도 모른다.

상처를 받아봐서든 한 번도 받기 싫어서든.


그래도 작가는 어차피 허구를 쓰는 소설가이니 좀 더 희망적으로 써주길 바랐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더 적나라하게 냉소적인 시선으로 진희의 삶과 생각을 그려내고 있다.


짠하다.

남자, 여자, 남편, 아내, 애인.. 이런저런 관계들이 있다 해도 어차피 인간은 그저 혼자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까.


희망을 가지고 싶지 않은 진희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청혼을 받지만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 남자가 끝까지 진희와 함께 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떠난다. 그런 사람이니까 밀어냈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진희 자신도 그런 결말에 대한 감정이 안도인지 후회인지 모를 것 같다.

작가는 진희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의 분신 같다.

하지만 자신을 두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작가를 진희는 더 좋아하겠지.

나라면 조금이라도 더 희망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지어 낸 그리스인들과 철학자들이 희망을 인간에게 내린 벌처럼 여겼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통도사 옆 계곡의 어린 음나무

(엄나무/개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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