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잔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바닥에 번진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는 무너진 것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 잔이 담았던 기쁨,
그 잔이 지켜주던 온기,
그 잔이 주던 위로.
이제는 흘러가 버린 물소리만이
내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바람은 흘러간 것만을 스치지 않았다.
내 뒤에 조용히 두 잔이 서 있었다.
그 잔은 한 번도 비워진 적 없고,
한 번도 나를 떠난 적 없었다.
나는 돌아서기까지
수많은 날을 흘려보냈다.
상실은 나를 가르쳤다.
잃음은 없음을 알게 하고,
없음은 남아 있는 것을 보게 한다는 것을.
그때,
남은 두 잔의 물결이
햇빛을 머금었다.
나는 잃은 것을 안고도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