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심리적 문제를
겪습니다.
이유 없는 무기력, 이유 있는 걱정
사람과의 거리에서 오는 불편함, 반복되는
자기 비난, 참기 힘든 분노까지.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이 마치 각기 다른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심리 문제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두 가지 감정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에요.
이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심리학과 뇌과학, 그리고 임상 현장에서는
이 두 감정이 대부분의 정서적 어려움의
뿌리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많이
있어요. 우울과 불안은 인간 삶 속에서 너무도
기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표면에 드러나는
증상이 아무리 달라도 그 뿌리는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이 두 감정은 인간의 진화 과정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달해 온 핵심 정서입니다.
불안은 위험을 예측하고 회피하도록 만드는
감정이에요.
사냥을 나간 원시인이 맹수를 상상하며 두려움
을 느꼈기에 도망칠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집단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외로움과 불안을
느꼈기에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려는 본능을
가질 수 있었지요.
우울도 마찬가지입나다.
실패나 상실을 경험한 뒤에는 잠시 활동을
멈추고 조용히 내면을 돌보게 만드는
감정이에요.
에너지를 비축하고, 갈등을 피하며, 감정을
응축하게 만드는 일종의 '정신적 브레이크'인
셈이지요.
이런 진화적 기능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지는 건
공부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생존 전략의 일종이에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깊은 우울을 느끼는 것도,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드는 감정의 흐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감정들이 너무 강하거나 오래 지속될
때입니다.
원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감정들이 오히려
일상을 방해하는 수준으로 커져버리면, 그것이
곧 심리적 고통의 이름이 되는 것이지요.
심리학 이론 역시 이 두 감정의 중심성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애착이론의 창시자인 존 볼비는,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가 평생에 걸쳐 정서반응과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울었을 때 부모가 따뜻하게 반응해 주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게 되고 불안을
조절할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반복적으로 무시당하거나 야단맞은
경험이 많다면, 아이는 불안을 다루지 못하는
어른이 되기 쉽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반대로 폭발시키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안정된 애착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사소한 일에 쉽게
불안해지거나, 작은 상처에도 깊게 우울해지는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뇌과학적으로도 이러한 감정들의 기반은 잘
설명됩니다.
불안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는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공황장애나 범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이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우울 역시 단순히 '마음이 힘든 상태'가 아니라
뇌의 특정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해마, 전전두엽 같은 부위들이 비활성화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약해지며,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지요.
말하자면, 우울과 불안은 마음의 문제일 뿐
아니라 몸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임상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례들 역시
이 두 감정이 얼마나 깊이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은
그 행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관계 속에서 과도하게 민감하거나 쉽게 상처받는
사람도, 거부당할까 봐 느끼는 불안이 중심에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계속 누워 있고
싶은 사람은 의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깊은 우울로 인해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달라도, 그 안에는 불안과
우울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이 두 감정이 '모든 심리 문제의
기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건 이 감정들이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자신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감정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해석의 렌즈예요.
내가 세상을 위협적으로 느낀다면, 나는 늘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내가 나 자신을 실패자라고 믿는다면,
나는 항상 우울할 겁니다.
우울과 불안은 해석의 틀이 되어
사람의 생각과 행동, 선택과 관계,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뿌리를 이해해야
해요.
이 감정들이 왜 생겼는지, 언제부터 커졌는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불안과 우울을 다뤄왔는지를
되돌아보는 것, 그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해결해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 아래에서 늘 작동하고 있는 이 두 감정과
솔직하게 마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심리적 고통의 이면에는, 결국'우울'과
'불안'이 있어요.
그리고 그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진짜 회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