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아기 우유값 달라하기도 치사했지만,
우유가 다 떨어져 한끼는 굶을 때가 되어서야
주는 버릇에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기저귀도 떼지 못한 15개월 아기를 들쳐 업고,
우유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일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기간을 제하고도 1년 반은 꼬박
출퇴근을 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만 두 시간
밤이면 눈 감고 아침이면 눈 뜨기조차 빠듯한
생활이었다.
하루 쓸 기저귀, 종일 먹일 우유와 이유식,
갈아 입을 옷, 몇 권의 책까지 챙겨
그때는 엘리베이터가 없던 지하철 계단을
아이를 업고, 짐을 들고 오르내렸다.
나중에는 유모차도 가지고 다녔다.
아이가 걷는 날이 많아지면서
종일토록 낮잠 한번 못 자고 엄마를 따라 다니다
지하철에서 기절하 듯 지쳐 잠이 들거나
더는 못 가겠다고 길 바닥에
누워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유모차에 태우면 아기도 나도 한결 편했지만,
퇴근길, 잠든 아이를 안고
유모차까지 들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식은땀에 흠뻑 젖을 만큼 지치고 고달팠다.
아이는 늘 피곤했고, 혀가 패이고 부어
먹을 때마다 아파했다.
잠도 쪽잠 자던 습관 때문에 예민해져서
고3이 될 때까지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지금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서
다행히 먹는 것 자는 것이 거의 편안해졌지만
그땐 그랬었다.
어떤 날은 배변을 미처 갈아주지 못해
엉망이 된 엉덩이를 추운 날,
따뜻한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공동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로 씻길 때, 아이가 감기 걸릴까
서둘러 씻기면서, 엄마인 나는
아이를 학대 하는것만 같은 죄책감에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키곤 했다.
강행군 같은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남편은 리모콘을 든 채 TV에서 눈도 돌리지
않고 종일 굶었다고 투덜대거나 짜증을 냈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할 수 밖에 없는날은
우유를 여러 차례 먹여야 한다고 부탁했는데도
귀찮아서 한 번만 챙겨 줬다는 말에 화를 내면
남편은 오히려
"그럼 데려가던지 네가 챙겼으면 될거 아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장사를 한다.
남편은 기억을 못 하지만, 결혼 초
나는 집을 넓히고 돈을 모을 꿈에 부풀어
함께 일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일을 시작하고부터
남편은 일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디 있는지 모를 남편을 찾아
가게마다 돌아 다녔다.
어느 날 빙둘러 앉아 화투판에 머리를 박고 있는
남자들 틈에서 남편을 발견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먼저 퇴근 시키고
가게마다 짐을 싸고,
등이 모두 꺼져도
남편은 올 줄 몰랐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오던 겨울날도
남편은 매일 화투판에 붙어 있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오래 서 있는 게
어려운 나는 일을 도맡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화투판에 붙어서 사는 남편 모습이 싫고,
도저히 이해도 되지 않아
결국 몇 달 만에 일을 그만뒀다.
지금도 남편은 수입이 좋다.
집을 사려 했다면, 서울에서도 괜찮은 집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수입의 대부분을
자기 유흥비로 쓴다.
겉으론 집에 다 쓰는 것처럼
남들에게 우는 소리를 하지만
가정에 들어오는 실제 생활비는
최저 생계비 수준이다.
그럼에도 자기만큼 잘 하는 사람 없다고
늘 큰 소리치며 당당하다.
남편에게 카드를 받아 쓰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비록 푼돈이지만 그마저 가능해지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큰 돈 들어가는 일은 지금도 알아서 해야한다.
특히 나와 관련해서 쓰는 것은
적은 돈일지라도 예외가 없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더
노동에 가까운 일은 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자기가 번돈으로 산다고 늘 못 마땅해 한다.
노는데 특화 된 남편 입장에선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을 마지못해 계속해야 하는것이 억울할만 하다.
현실적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는
내 등 뒤에서 편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 늘 화가 나고 화를 내게 되는가보다.
남편은 그 억울함을
말로, 행동으로
가끔은 정말 나를 죽이고 싶은 눈빛으로
쏟아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을 줄 수 없다.
남편은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밖에 없고,
나는 견디기 힘든 삶을 감내하며
아직도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남편의 가슴속에 팽창하기만 하던
원망과 미움이 가끔씩 이완되는 것을 본다.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를 긴장 속에서
불안은 존재하지만
조금은 숨이 트이고,
조금은 살기가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