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몸을 치료함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우울과 관련하여 가장 자주 언급되는 신경전달물질은 세로토닌(Serotonin), 도파민(Dopamine),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입니다. 이 세 가지 물질은 감정, 의욕, 수면, 식욕 등 우리의 기본적인 생존과 정서에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해요.
세로토닌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죠. 감정의 안정과 조절, 수면, 식욕, 통증 조절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면 쉽게 짜증이 나거나,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균형추가 흔들리는 것이죠.
도파민은 ‘보상의 화학물질’이라고 불리며, 기쁨, 동기부여, 쾌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뭔가를 성취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나, 기대되는 일을 앞두었을 때의 설렘은 이 도파민 덕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이 부족해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나, 예전에 즐겁던 일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지요.
노르에피네프린은 주로 각성과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물질입니다. 정신적 에너지, 집중력, 반응 속도 등과 연결되어 있어요. 이 물질이 부족하면 집중이 안 되고, 쉽게 피로를 느끼며, 에너지가 없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전달물질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다양한 우울 증상이 생겨나죠.
이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미세하게 균형을 잃는 순간, 우리의 뇌는 신호를 보냅니다.
감정이 불안해지고, 평소의 나답지 않은 모습이 자꾸만 고개를 들게 되지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감정의 브레이크
전전두엽은 우리 뇌의 앞쪽에 위치해 있으며, 감정을 조절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충동을 억제하며, 복잡한 결정을 내리는 데 관여하는 부위예요. 말하자면 전전두엽은 감정과 사고를 조율하는 뇌의 이성적인 ‘관리자’인 셈이죠.
우울할 때는 이 영역의 활성도가 현저하게 낮아져요.그래서 감정이 쉽게 요동치고,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더 강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작은 실수나 일상적인 좌절에도 지나치게 낙담하거나,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는 경향이 생기지요.
또한, 전전두엽은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능력’과도 관련되어 있어서, 이 부위의 활동이 저하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를 품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도 이렇게 힘들 거야’,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을 거야’ 같은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편도체(amygdala): 감정의 경보 장치
편도체는 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구조로, 공포나 불안, 위협을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빠르게 반응하게 하는 곳이에요. 즉, 위험을 빠르게 감지하여 ‘도망치거나 싸우게 만드는’ 경보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울 상태에서는 이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실제보다 상황을 더 위협적으로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에 과하게 반응하게 되죠. 일상의 작은 사건도 ‘큰일’처럼 받아들여지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표정, 행동을 ‘나를 싫어한다’거나 ‘무시당했다’고 느끼며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어요.
특히 전전두엽의 조절 능력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이 편도체의 과민 반응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감정이 겉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불안과 두려움이 일상생활을 잠식하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게 됩니다.
해마(hippocampus): 기억과 감정의 저장고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감정과 연관된 기억을 처리하는 역할을 해요. 하지만 우울한 상태가 오래되면 이 해마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여러 차례 보고 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해마는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한 부위이기 때문이에요. 스트레스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높아지게 되는데요. 이 코르티솔이 해마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면 해마가 위축되면서 기능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해마의 기능이 저하되면, 단지 기억력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만 반복해서 떠오르고, 긍정적인 감정에 집중하기 어려우며, 생각이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게 돼요 . 결국, 우울한 사고 패턴이 더 깊어지고 반복되기 쉬운 상태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한의학에서는 우울을 '감정'이 아니라 기운의 흐름이 막히고, 장부의 균형이 깨질 때 생기는 몸과 마음의 혼란으로 이해합니다.
아직 심리학이나 뇌과학처럼 익숙하고 과학적인 개념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한의학은 인간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바라보는 시선을 지니고 있어요.몸과 마음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생명체' 이며, 그 안의 모든 흐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 간(肝): 억눌림, 분노, 우울이 머무는 자리
간은 ‘소통’과 ‘흐름’을 주관하는 장부예요.
마음속 감정을 억누르거나 오래 참을 때, 간의 기운이 막히면서 울체(鬱滯)가 생겨요.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고 해요.
답답함, 분노, 억울함,예민, 초조함, 불안 그리고 목과 가슴의 뻐근한 압박감, 두통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어요.
■ 심(心)과 비(脾): 생각이 많아지고, 기운이 사라지는 구조
심은 마음을 주관하는 기관, 비는 생각과 소화력을 담당하는 장부예요.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심비허약(心脾虛弱)**을 일으켜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면증, 불안하고 쉽게 놀라며, 기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사라지고, 소화기능까지 약화돼요.
'생각이 너무 많고, 계속 머리가 복잡한데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느낌이 이 두 장부의 경고일 수 있어요.
■ 신(腎): 깊은 무기력과 공허함의 뿌리
한의학에서는 신장을 '원기'의 뿌리로 봐요.
신이 약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유 없는 공포와 무기력함이 반복될 수 있어요.
이건 ‘열심히 해도 내 안이 텅 비어 있는 느낌’과도 닿아 있어요.
체질별 감정 반응 – 사상체질
사상체질은 조선 후기 이제마 선생이 만든 이론으로, 사람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네 가지 체질로 나누고, 각각의 장부 특성, 심리적 경향, 감정 반응, 병의 유형 등을 설명해요. 체질에 따라 우울이나 불안이 드러나는 방식도 서로 다릅니다.
태양인(太陽人)
감정적 반응:
과도한 경쟁과 목표, 스트레스로 분노, 짜증이 많아요.
좌절감에 민감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이 격해짐
우울보다도 조급함, 분노, 신경과민 형태로 나타나요
우울 시 경향:
계획이 무산되거나 사회적 실패를 겪었을 때 감정이 폭발하거나 내면이 무너짐
자존감 하락이 빠르고, 좌절을 잘 견디지 못해요.
태음인(太陰人)
감정적 반응: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편이예요.
스트레스가 오래 쌓여서 신체화(두통, 소화불량 등)로 나타남
타인의 기대나 책임감에 짓눌리기 쉬워요.
우울 시 경향:
무기력, 수동성, 소화장애 같은 신체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 많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은 무겁고 답답함
주변에 말하지 않고, 혼자 견디려다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요
소양인(少陽人)
감정적 반응:
감정 기복이 크고, 자극에 예민해요.
성급하고 외향적이지만 내면은 불안정함
감정을 빠르게 표출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요.
우울 시 경향:
감정이 과하게 고조되거나, 쉽게 떨어지는 감정 기복형 우울
피로, 불면, 과민반응 등으로 일상이 무너지기도 해요.
자극을 추구하다가 지쳐 무기력해지기 쉬워요.
소음인(少陰人)
감정적 반응:
불안과 걱정이 많고, 항상 최악을 대비하는 경향이 있어요.
낯선 환경에 민감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성향으로 감정을 억누르다가 신체 증상(위장 장애, 불면 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우울 시 경향:
불안성 우울, 예민한 감정, 자책, 무기력 등 복합 증상
자기비판과 완벽주의 경향이 우울로 이어지기 쉬움
에너지가 낮고, 쉬는 것조차 긴장을 동반해요.
최근 연구 방향
약의 항불안 효과 연구: 동물실험 및 임상에서 귀비탕, 가미소요산 등이 GABA 수용체 조절, 코르티솔 억제 등에 효과 있음이 보고됨.
침 치료와 뇌파 안정성 연구: 특정 혈자리에 침을 놓을 경우 전전두엽의 활동 증가, 편도체 과활성 억제 등이 확인됨.
기공·명상과 자율신경계 조절: 심박변이도(HRV) 증가, 교감신경 억제, 뇌 기능 회복과 연계 연구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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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적 치료 시 유의사항
체질(사상체질)에 따라 약제와 침 자리가 다름.
일시적인 진정 효과보다는 장부의 허실을 장기적으로 조절하는 치료가 중요함.
한의학은 단순한 증상 억제보다 전반적인 몸과 마음의 흐름을 조율하는 데 초점이 있어요.
흥미롭게도, 뇌과학과 한의학은 서로 다른 언어로 우울을 설명하지만, 결국 비슷한 맥락에 도달합니다.
개념 비교ㅡ뇌과학과 한의학
감정 조절의 중심ㅡ전전두엽 기능 저하, 심(心)의 허약
부정적 감정의 과잉ㅡ편도체 과활성화, 간기울결(肝氣鬱結)
스트레스 기억의 고착ㅡ해마 위축, 기혈 정체, 신허(腎虛)
신체 반응ㅡ수면·식욕 이상, 통증, 기운 저하, 소화기 증상, 자율신경 혼란
이처럼 우울은 뇌에서도, 몸에서도 ‘흐름’이 막혔을 때 찾아오고
그 흐름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곧 치유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