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서 짜증이 난 아저씨-에리히 프롬과 상담

에리히 프롬, 돈 없는 월급쟁이와 상담하다.

by 지식브로커

뭐니뭐니해도 돈이 없다.


돈이 없다. 돈이 없어. 점심시간 빽다방에서 2천원 짜리 커피를 야무지게 결제하고, 적립까지 했다. 카드 출금과 함께 잔고를 보니 케이뱅크 잔고가 50만원도 안 남았다. 월급날이 지난지 10일 밖에 안됐는데..벌써 더워서 이제 여름옷도 사야하는데..3년도 넘은 검은색 반팔 티셔츠가 색깔이 다 빠졌다.


집이 제일 문제다. 나쁜 녀석. 내 통장에서 100만원이나 가져가다니. 아파트 관리비에 가스요금까지 최소 1/3은 이놈이 떼간다. 망할 차. 주말 밖에 잘 끌지도 않는 녀석인데. 기름값에 엔진오일도 갈아야하는데. 아 전기차 살 걸...교육비는 말해 뭐하랴. 아이 영어학원비, 축구교실 비용… 늙고 점점 병원 가시는 횟수가 늘어나는 부모님 걱정은 더 크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수입이 있지만, 어떡하냐.


회사가 짜증나지만 그만둘 수 없다. 아내와 내가 그나마 맞벌이를 해서 다행이지, 둘 중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전선이 뻥 뚫린다. 옛날 용돈 받으면서 사는 남편들 불쌍하다고 했는데, 내가 딱 그 꼴이다. 셀프 용돈을 받고 있다. 이제 또 어버이날이 지나면 아버지 생신이다. 하, 이번 연휴 때 그냥 세부 갔다오지 말걸. 괜히 3박 5일 저가항공 타고 갔다왔지만, 재정이 엉망이네. '성공'같은 거창한 말 필요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좀 여유로워서,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부모님께 좀 더 드리고, 애들한테 안 미안했으면 좋겠어. 지금 가는 길 어디냐고? 응, 집 근처 로또 명당. 혹시나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지. 돈만 많으면, 진짜 돈만 많으면 이 지긋지긋한 걱정 다 사라질 것 같은데. 거부는 아니어도 돼. 그냥 일 안 해도 먹고살 만큼만. 나만 이런가? 경제적 자유 어쩌고 하는데, 나 빼고 다 돈 잘 벌고, 부모님 잘 만나서 여유로운 것 같다. 가슴이 먹먹하다. 계속 이런 돈 걱정 하면서 살아야하나?



에리히 프롬을 만나다.


점심시간, 이런저런 생각에 답답해서 걷다가 좀 떨어진 공원 벤치에 주저앉는다. 짜증 때문인지 빽다방의 플라스틱 컵이 소리를 내며 구겨진다. 옆에서 원모양으로 허리를 신나게 돌리며 운동하는 아저씨가 째려본다. 안경 쓰고 통통한 아저씨다. 괜시리 민망해서 시선을 피하자,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건다.


프롬: 아이고 아주 꽉꽉 움켜지느라 커피가 쏟아지겠구만. 그렇게 꽉 쥐면 있는 것도 넘치지.


나: 예, 예. 그냥 답답하네요.


프롬: 나도 소싯적에는 무조건 잡으려고만 했지. 돈도, 사랑도, 명예도. 허허

(나왔다. 나때, 라떼. 무대응이 상책이다.)


프롬: 그중에 돈이 제일 잡고 싶었지. 그놈의 돈. 자네는 돈이 많으면 다 해결될 것 같나? 남들보다 잘나 보이면 행복해질 것 같고?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하긴. 직장인이 돈 고민 말고 뭐가 있나. 나도 모르게 대화를 해본다.)


나: 그럼요. 당연하죠. 돈만 많으면 이 빌어먹을 회사도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텐데요. 돈만 많으면 걱정의 대부분은 해결된다 아닙니까?


프롬: 하고 싶은 것? 그게 뭔데? 구체적으로 말해봐.


나: 음, 일단 잠 좀 푹 자고. 여행도 실컷 다니고 싶고. 애들이랑도 시간 많이 보내고 싶고. 뭐, 가족들 원하는 거 다 사주고. 부모님 호강도 시켜드리고. 뭐 남부럽지 않게 차랑 집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요. 제일 중요한 건, 이 지긋지긋한 회사 안 나오는 거죠!


프롬: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집, 차, 잠, 여행, 가족, 그리고 직장을 벗어나는 것. 남부럽지 않은 삶. 결국 그 모든 것이 '돈'이라는 수단으로 '가지려고 하는 것'¹들이군. '더 많이 쥐려고 하는 것'에다, '남들보다 더 폼나 보이는 것'까지. 그게 자네의 진짜 갈망인가?


나: 그럼요.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뭘 할 수 있잖아요. 돈이 없는데 어떻게 가족들한테 잘해주고, 남부럽지 않게 삽니까?


프롬: 그럼 묻지. 집으로 인해서 자네가 얻는 건 뭔가?


나: 그야, 안정감이죠. 이제 여기저기 떠돌아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 그리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안정감이요.


프롬: 그 안정감, 집과 차가 없으면 없는 건가? 자네는 그저 벽과 천장이 있는 시멘트 건물을 원하는가? 아니면 돌아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인가? 집이 없었던 시절도 이렇게 불안해했는가? 남들이 다 가진다고 해서 그런 건가?


나: 아, 물론 돌아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죠.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죠.


프롬: (씨익 웃는다.) 나는 자네가 돈과 집으로 인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묻는 거야. 돈과 집은 수단이지. 안정감과 휴식을 진짜 얻고 싶은 거 아닌가? 안정감과 휴식이라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나: 아, 뭐 그렇긴 하죠... 돈이 없어도 어느 정도 가능하긴 하죠..


프롬: 또, 돈이 없으면 가족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하나? 전화 한 통 걸어서 "사랑한다" 말하는 데 돈이 드나? 부모님께 안부 여쭙는 데 돈이 드나? 여행을 가고 싶다고? 자네가 정말 원하는 건 비행기 티켓이나 고급 호텔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마음의 여유' 아닌가? 그게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일인가?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가까운 공원에서 햇볕을 쬐는 건 돈이 드나?


나: 아… 그건… 그렇죠.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네요.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해도 마음속 깊은 곳까지 편해지지는 않아요. 여전히 통장 잔고 보면 불안하고, 남들 잘나가는 거 보면 배 아프고…


프롬: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럼 하나 묻지. 돈이 넘쳐나서 가족과 무인도에서 모든 걸 누리고 평생 산다면, 행복할 것 같나? 남과 비교할 일도, 돈 걱정도 없는 곳에서 말이야.


나: (멍해진다) 음… 처음엔 좋겠죠. 그런데… 가족이랑만 있으면 답답할 것 같고. 제가 뭘 잘하는지 저 혼자만 알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허전할 것 같아요.


프롬: (미소 지으며) 허전함? 바로 그거다. 사람은 결국 '관계 맺는 존재'²거든. 아무리 돈이 많고 자유로워도, 남과의 진정한 연결 없이는 '진짜 나'³를 찾을 수 없어. 남들보다 잘나고 싶은 마음도 결국 남의 '인정'⁴ 받고 싶은 거잖아.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자네는 그 인정에 너무 휘둘려 '내 본모습'⁵을 잃는 것 같군.


나: '내 본모습'요? 그럼 지금 저는 제가 아니었다는 말인가요? 남들과 비교하며 사는 게 습관이 돼버렸어요.


프롬: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시작이다. 돈 때문에 겪었던 고통과 비교의식은 결국 네 자아가 '길을 잃어버렸기'⁶ 때문이야. 돈과 남과 비교하면서 정작 너 자신과 멀어진 거지.


나: 돈과 비교라. 근데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교하면서 살아야하는 거 아닌가요? 좀 허무하더라도, 일정 부분을 충족하려고 노력하면서요.


프롬: 충족이라. 그 불안과 허무함은 '얽매임'⁷에서 온다. 무언가를 '가지려는 마음'⁸,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가지려는 마음'.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그 마음. 하지만 진짜 자유는 그 얽매임에서 벗어날 때 오는 거야.

에리히프롬과 상담.png


나: 혹시 산에서 내려오신 거 아니죠? 답답한 소리네요. 그럼 어떻게 벗어나요? 당장 대출금도 못 갚고, 회사도 그만둘 수 없고, 남들 안 보고 살 수도 없는데요.


프롬: 나는 회사 때려치우라는 얘기 안 했어. 다만 '회사나 돈, 남과의 비교에 팔려버리는 인생'을 살지 말라고는 거지. 자네 인생에서 회사나 돈이 주인인가? 자네가 주인인가?


자 이 두 가지 중 뭐가 맞는 것 같은가? 뭐가 인생살기에 나은가?


(1) '가지려는 삶'⁹: 돈이 없으면 죽는다. 일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쉴 틈 없이 경쟁해야 한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직업, 수입, 집 크기’다.


(2) '존재 자체의 삶'¹⁰: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가치 있다. 일은 나를 위한 수단이지, 내가 일의 부속품은 아니다. 쉼은 낭비가 아니라 회복이다. 존재를 증명하는 건 내가 느끼는 사랑, 의미, 관계다.


'삶의 주인이 되는 생각'¹¹으로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삶 말이야.


나: 뭐 지금 아저씨 논리대로라면 지금 제 인생에서는 회사나 돈이 주인이겠죠. 근데 존재 자체로 주인이 되는 삶은 뭐에요? 당장 이 회사 때려치우고 도 닦으러 갈 수도 없잖아요.


프롬: 물론이지. 다 버리라는 말은 아니야. 다만 네 '가치'는 통장 잔고나 사회적 지위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아야 해. 너는 사랑하고, 생각하고, 창조할 수 있는 '움직이는 존재'¹²다. 이걸 명심해. 그 힘을 왜 외면하는 거지?


나: 당연히 그 힘이 제 마음 어딘가에도 있겠죠. 근데 솔직히 회사생활하기 벅찹니다. 회사는 버티기도 힘들고, 계속 노력해야 살아남는 겁니다.


프롬: 버텨내는 것도 힘이지. 하지만 그 힘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저 '가지려는 것'과 남보다 나아지려는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아? 가정과 회사에서 모두 너 자신을 드러내고, 남과 진정으로 관계를 맺어봐. 그저 회사나 시장에 '팔리기 위한 네 자체의 상품을 만들지'¹³ 말고, 속이 꽉 찬 '진짜 너'로 살아가라는 말이지. 남과 비교하는 순간, 너의 진짜 가치는 사라지는 거야.


나: (한숨을 쉬며) 자아실현 하라고요? 사회는 이미 이런데요, 저 혼자 이렇게 바뀐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다들 돈 벌려고 아등바등하고, 남들 시선 신경 쓰고 사는데, 저 혼자만 유유자적한다고 세상이 저를 내버려 둘까요?


프롬: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사회? 사회는 수많은 '너희들'이 모여 만든 그림자에 불과하다. 물론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지. 하지만 그렇다고 너 자신마저 그 그림자에 삼켜져야 한다는 말인가? 너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¹⁴이지, 사회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야. '모두가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자유로부터의 도피'¹⁵다.


나: 도피라니요. 저는 그냥 좀 지쳤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냥 넷플릭스나 보고 살고 싶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게 제일 편할 것 같아요.


프롬: 넷플릭스? 그래, 편하겠지. 하지만 그 편안함은 진짜 '편안함'이 아니라 '무기력'¹⁶이다. 네 '움직이는 힘'을 쓰지 않고, 그저 주입되는 것만을 받아들이는 삶. 그게 진정한 '내 본모습'으로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나? 화면 속 이야기는 너의 삶이 아니야. 너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관객'이 되는 거지.


나: (얼굴이 굳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막연하게 '나는 누구인가'라고만 물으면 답이 없잖아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은 없나요?


프롬: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빛에 한층 깊은 이해가 담긴다.) '나는 누구인가?'¹⁷라는 질문은 시작점일 뿐이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주인이 되는 방식'을 실천하는 거야. 아주 간단하고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해 봐.


먼저 일상 속에서 ‘왜?’ 묻기¹⁸. 늘 묻는 거야. “왜 이 일을 하지?” “나는 이 업무를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지?"와 같이. 기계같은 삶에서 묻다보면 자신의 삶을 주도하게 되지. 그저 "돈 벌려고. 먹고 살려고"와 같은 대답으로 갈무리 하지마.


일단 들어보게. 타인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관찰해보게¹⁹. 직장동료, 팀장, 아내, 아이. 모두 진심으로 들어보고 깊게 관찰해보게나. 그러면 이해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사랑하게²⁰. 그저 아이나 아내를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고맙고 감사한 것으로 생각하는거지. 다들 습관처럼 사랑한다고 하지만, 영혼이 없더군 ㅎㅎ


관계를 만들고 좋아해봐. 비교하지 말고, 가족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친구에게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마지막으로 행동하게²¹. 아주 작게라도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을 직접 하기. 아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돌든. 잠깐 눈 감고 숨을 느끼든. 일을 하기 위한 자격증 공부? 좋아. 그걸 '더 많은 돈을 위한 수단'으로 보지 말고, '내 본모습'을 찾아가는 '놀이'처럼 즐겨도 좋네.


프롬은 또 씨익 웃더니, 심심할 때 또 여기로 오게나!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깊은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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