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못한 아저씨-장자와의 상담

장자, 승진 못한 아저씨를 혼내

by 지식브로커

또 승진 못했다.


또 물먹었다. 내년도 또 차장으로 살아야 한다. 아나 진짜. 더럽게 짜증나네. 벌써 두 번째다.


회사 공지메일이 오른쪽 하단에 작게 떴다. [인사발표] 기대감을 안고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클릭한다. 내 이름. 없다. 거지같네. 이 팀장 놈 인사평가 잘 줬다고 하더니 대체 왜? 솔직히 누가 축하한다고 하면 뭐라고 얘기할지 준비도 해놨는데.


옆부서 내 후배 차장은 부장으로 올라섰나보다. 벌써 축하한다고, 한 턱 쏘라고 얘기하고 있다. 뒤통수가 뜨끈하다. 황급히 화장실로 간다. 당황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싫어 얼굴 씻기 싫어 괜한 손만 뿌득 뿌득 씻는다. 어느새 세면대 옆에 상무가 와서 슬쩍 얘기한다. "아 그게 말야. 이번에 워낙 진급대상자들이 많아서..우리 부서 이번에 실적도 좀 그렇고.." "예, 예. 아니 그래도 두 번 연속은 너무 하잖아요." "미안허다. 올해 우리 본부 잘하면 꼭 올라가보자. 나도 죽겠어. 이 주임도 대리 떨어지고. 간신히 최과장만 차장 됐다."


남들이 뭔 상관이냐. 하아. 이 회사에 나름 청춘 바쳤다면 바쳤는데 이게 뭔 꼬라지냐. 짜증이 난다.


후배 놈들, 내가 퇴근하고 술 사주면서 인생 상담해 주고, 주말에는 불러내서 업무 가르쳐줬던 그 녀석들이 이제 내 위에서 나를 지시하고 있다. "차장님, 이거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그 한마디에 담긴 같잖은 권위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내가 능력이 없는 건가? 정치질을 못하는 건가? 아부 떨면서 높은 사람들 비위 맞추기도 싫고, 그렇다고 여기서 이대로 썩어가기도 싫다. 인사평가 어떤 놈이 만들었나? 계속 이 엿 같은 상황을 견뎌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다 때려치우고 나가야 하는 걸까?



장자를 만나다.


나는 퇴근길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퇴근길,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헤치고 간다. 진급 축하 회식설문 알람이 떴지만, 그냥 무시한다. 저 멀리서 누가 의자에 앉아 노래를 연주한다. 거지인가? 특이하게 구걸도 안 하고, 낡은 멜로디언을 들고 엉망진창인 박자로 아무 노래나 부르고 있는 깡마른 노인이다. 관중도 없고 대체 어디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건지. 그의 얼굴에는 때와 주름이 가득했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가 얘기한다.


장자: 꼭, 곧 도축될 소 같은 눈을 하고 있구만 그려.


나: 예?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저보고 소라뇨.


장자: 옷은 멋지게 차려입고, 번쩍거리는 반지와 스마트워치. 금목걸이까지. 하. 근데 눈에 힘이 없어. 이거 자기가 제사상에 올라가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있는 소 같아.


나: 무슨 소리십니까. 어르신이야말로 걸인 같은데.


나도 모르게 빽하니 화를 낸다. 그가 껄껄 웃는다.


장자: 하하.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장선생이지. 그대는 뭔 고민이 있길래 나를 이렇게 뚫어지게 보는가? 꼭 고민 있고 힘든 녀석이 내 삶을 부러워하더군.


나: 하. 제 문제 심각하죠...심각합니다. 저는 지금 승진도 못 하고, 후배 놈 밑에서 일하게 생겼고. 제 맘대로 사는 게 참 부럽네요. 저는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서요. 특히 회사에서 인정 못 받으니 더 그렇죠…


장자: "네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게 다 네가 쓸데없는 기준¹에 갇혀서 그런 거다. 남들한테 잘 보이려고, 회사라는 틀²에 맞춰 쓸모 있는 부품이 되려고 애쓰니까 힘든 거지."


나: “쓸데없는 기준이라뇨? 승진도 못 하고, 후배한테까지 밀렸는데, 이게 어떻게 쓸데없는 기준입니까?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제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인데요.”


장자: "부정당하는 기분? 허허, 네가 네 진짜 모습³을 잃고 살아서 그런 거다. 회사라는 틀에 너를 억지로 쑤셔 넣으니까 숨이 막히는 거지.” 자, 한 가지 물어보자. 그러면 저번에 승진한 부장, 팀장, 임원들 어디에 있나?


나: 음, 저번 팀장은 혼자 일하다 결국 실적 못 내서 이직하고… 임원은 올해 짤렸고… 옆에 다른 팀장은 병가냈고… 저보다 스트레스는 많은 것 같네요. 물론 개중에 잘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장자: 허허, 그래서 잘 나가는 놈이 얼마나 되나? 제물로 바쳐진 소⁴나 다름없지. 제 무덤 제가 파는 거야. 쓸모있다고 회사에서 승진시켜줬지. 근데 결국 스트레스에, 실적 못내면 잘리고. 잘하고 쓸모있다는 놈들은 결국 먼저 사라지지.


나: 그렇긴 하네요. 그렇다고 무능한 놈이 되긴 싫어요. 가늘고 길게도 좋긴 하지만, 자존심 상한다구요.


장자: 후배고 상사고 다 똑같은 인간일 뿐이야. 그들의 시선에 네가 갇힐 이유가 뭐가 있냐? 자존심은 혼자 드는 생각⁵이지. 네가 지금 승진에 목매는 것도, 후배에게 질투하는 것도, 모두 네 마음이 쓸데없는 욕망⁶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야. 마치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⁷가 더 깊이 들어가려 발버둥 치는 꼴이지.


나: “그럼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이대로 계속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나가야 하나요?”


장자: 뭘 꼭 '해야'만 하냐? 세상 흐름⁸은 말이야, 억지로 뭘 하려 들면 망가져. 물이 흘러가듯, 바람이 불어가듯, 그냥 자연스럽게⁹ 사는 거지. 네가 지금 이 회사에 얽매여서 네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놈의 세상은 말이야, 쓸모 있는 것만 추구하다가 결국 다 망가뜨린다.¹⁰ 건물 올린다고 산 깎고, 돈 번다고 사람 혹사시키고. 너도 지금 그렇게 쓸모 있는 부품 되려고 안간힘 쓰다가 고장 난 거 아니냐?”


장자와 상담.png



나: 그럼 승진도 다 부질없다는 말씀이세요? 제가 회사에서 제 쓸모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던 게 다 바보 같다는 건가요?


장자: 바보 같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목표가 오히려 너를 옭아맸던 사슬¹¹이었던 거지.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네 진짜 모습이 어디로 흘러가고 싶은지, 그건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만 따라간 거 아니냐? 네가 가르쳤다는 그 후배 놈이 승진한 건, 그 놈이 그 회사라는 틀에 더 잘 맞는 ‘쓸모’를 가졌기 때문일 뿐이다. 그게 네 가치와는 아무 관계 없는거지.


나: 하지만 자존심이 너무 상합니다… 저는 단지 그냥 부장이 되고 싶었어요.


장자: 자네는 아직 회사라는 감옥¹²과 부질없는 목표에 갇혀 있구먼. 차라리 쓸모없는 놈이 되봐라.


나: 예? 그러다가 저 영원히 차장이에요. 아니, 잘릴지도 몰라요.


장자: 네가 이렇게 쓸모가 없으면 오히려 오래 살아남을지도¹³ 모른다. 능력있는 놈들, 스트레스만 받고 일찍 죽기 마련이지. 가늘고 길게 가봐라. 후배고 상사고 다 똑같은 인간일 뿐이야. 네가 부장, 차장 이런 것에서 자유로워지면¹⁴ 그들의 시선에 네가 갇힐 이유가 뭐가 있냐?


나: 자유로워지는 게 가능한가요? 그리고 이렇게 짜증 나고 자존심 상하는 기분이 사라지나요?


장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 기분 자체가 너를 얽매지 않게 될 거다. 마치 텅 빈 방¹⁵처럼, 네 마음을 비우면 어떤 소리도 너를 붙들지 못한다. 고통은 네 마음이 만들어내는 소음일 뿐이다.


나: 그래도 막막하네요. 그렇게 막 살다가 진짜 잘리고 굶어 죽으면 어떡합니까? 제가 쓸모 없어진 존재가 돼서 완전히 버려지면요? 마음가짐만 바꾼다고 당장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뭘 어쩌라는 겁니까? 그래서 뭘 해야 하냐고요! So what?!"


장자: 허허, 그래서 뭘 해야 하냐고? 네가 지금 원하는 건, 어쩌면 어떤 답¹⁶이 아니라,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울 강력한 약 같은 거겠지. 하지만 세상에 그런 약은 없다. 내가 너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이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승진, 후배, 타인의 시선, 그리고 너 자신을 옭아매는 '쓸모'라는 환영이 아니더냐?"


나: 그렇긴 하지만, 이걸 뭔가 당장 놓기가 어렵네요. 답은 없다는 말이죠. 어느 정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사회에 살려면 인정은 받아야 하니까요.


장자: 너는 지금 '잘리고 굶어 죽을까 봐' 두려움에 갇혀 있다. 그 두려움 자체가 너를 옭아매는 사슬이다. 네가 강을 건너다 빈 배²⁰와 부딪쳤다면 화낼 사람이 없겠지? 근데 그 배에 누가 타고 있었다면? 넌 분명 화를 냈을 거야. 네가 지금 '잘리고 굶어 죽을까 봐' 화내는 것도 다 네 마음에 그런 생각이라는 놈이 타고 있어서 그래. 그놈을 내려놔야지. 네가 진짜로 굶어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도 아닌데, 미리 걱정하고 마음을 얽매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결국 네가 '당한다'고 느끼는 것도 네가 그렇게 정의하기 때문이야. 회사가 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좋아, 그럼 넌 더 이상 그들의 기준에 맞춰 살 필요가 없어져. 그게 진짜 자유아니겠냐? 마치 고목나무가 제멋대로 늙어 아무도 베어가지 않아 오래 사는 것처럼, 너도 남들이 정한 쓸모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네 삶의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다. 네가 고정관념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면, 회사를 그만두든 계속 다니든, 어떤 선택도 너를 얽맬 수 없어. 그저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는 거지. 그게 네 진짜 삶을 사는 방법이다. 자, 이제 좀 알겠냐? 이 늙은이 말은 여기까지다. 이제 네가 뭘 할지, 뭘 내려놓을지는 네 선택이다. 계속 짜증내면서 부러워할지, 아니면 그냥 흘려보낼지.


그는 어처구니 없게 쳐다보는 나를 신경도 안 쓰고 또 제멋대로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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