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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a May 25. 2020

내가 어렸을 때.

The Sign 1.

내 공책의 앞쪽에는 

그 과목의 필기 내용이 있었지만 

뒤쪽은 그렇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진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교과서와 공책을

다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휘리릭 넘겨지는 

교과서와 공책들.


아버지는 무척 화가 나셨었나보다.


내가 너 이러라고 

그렇게 힘들게 돈 벌어서

이런 걸 사주는 줄 아느냐!! 였던 것 같다.


교과서와 공책은 던져지고 

나는...꼴지는 아니었으므로 

아버지에게 아주 조금만 미안했던 것 같다. 


내 교과서와 공책의 뒤쪽엔 

수많은 그림들.


그러나 그리 대단한 건 못되고 

그저 낙서 같은 것들.


여자도 있었고 

구두도 있었고 

이것저것 깨작깨작 

오밀조밀 나름 알차게.


공책은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내 딸과 

그림으로 소통한 지 

십오 년이 다 돼간다.


만일 내가 그때 

그렇게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내 딸은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공책에 필기를 하는 대신 그림을 그린다.


그때의 나보다는 

훨씬 잘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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